한국일보

미국에서 아직 이가 아프다

2024-09-17 (화)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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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은 가장 짧은 취임사를 남긴 대통령으로도 기록돼 있다. 그의 2대 대통령 취임 연설은 135자, 2분 분량이었다. 취임사가 이처럼 짧았던 것은 치통 때문이었다. 맞지 않는 틀니 때문에 통증이 심해 길게 말하기 어려웠다. 그 보다 4년 전 초대 대통령 취임 때 워싱턴에게는 이미 이가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무로 의치를 해 넣었다. 나중에는 코뿔소 상아와 다른 사람들의 이로 만든 틀니를 썼다.

당시는 생니를 뽑아 치과의사에게 파는 것이 돈이 됐다. 지금의 장기 매매처럼 이빨이 거래된 것이다. 워싱턴의 마운트 버논 저택에는 300명이 넘는 노예가 있었다. 틀니에 사용된 이는 여기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1달러 지폐에 있는 워싱턴의 초상화를 보면 왼쪽 볼이 약간 부어 있음을 알게 된다. 맞지 않는 의치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면 오른쪽 볼에는 칼자국 같은 흉터도 보인다. 심각한 잇몸과 치아 질환 치료 과정에 생긴 것이라고 한다. 치아 관리에 실패했던 건국의 아버지가 치통에 시달린 흔적은 지폐에 남아 전해진다.

두 어 달 전 치통이 소품처럼 설정된 상황극이 한 교회에서 공연된 적이 있다. 부모 자녀 간의 소통 문제를 다룬 이 짧은 극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늘 치약을 들고 다녔다. 치통 때문이었다. 아플 때 치약을 바르면 좀 낫다고 했다. 치과에 가라고 성화인 자녀들과 선뜻 치과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어머니. 무엇보다 돈이 문제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얼마 뒤 자살했다. LA 한인가정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물론 어머니가 목숨을 끊은 것은 치통 때문은 아니었으나 워싱턴 이후 20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치통은 여전히 중요한 이슈로 남아 있다.


치과 치료를 받기 위해 매달 텍사스에서 캘리포니아로 오는 악관절(TMJ) 환자가 있었다. “왜 비행기를 타고서까지 여기 오죠?” “아프니까요.” 치과의는 간략하게 답했다. 치통을 앓아 본 사람은 치통이야말로 견디기 어려운 것임을 안다. 몸이 아프면 카운티 병원 응급실 같은 데를 찾아 가 드러누우면 된다. 이는 아무리 아파도 그럴 수 없다.

LA에서 잠시 무료 치과 클리닉을 했던 치과의사 최 아무개 씨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중년 여성이 왔는데 상한 이빨 여섯 대 가운데 살릴 수 있는 게 없었다. 모두 뽑아야 했다. 발치 후 “선생님예-”하면서 내미는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을 보며 눈시울이 뜨끈해지더라고 했다. 치과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한인들의 사정은 갖가지였다. 이 클리닉은 주위 의사들로부터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괜한 일을 한다는 거였다. 그 말이 옳았다. 한 두사람이, 뜻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치과 치료를 위해 한국에 가는 것은 드물지 않다. 사돈에 팔촌에 치과의라도 있으면 금상첨화. 싸고, 빠르고, 잘 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미국의 치과 치료야 말로 인종차별적이다.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확실히 구분된다. 기본적인 치과 검진에서도 소외된 미국인이 허다하다. 치과보험 없는 미국 성인이 7,700만명에 이른다고 한 통계는 말한다. 65세면 받을 수 있는 메디케어도 암 치료와 장기이식 등 의료에 꼭 필요한 극소수 경우가 아니면 치과는 커버하지 않는다. 90종이 넘는 보험사들의 메디케어 상품 중에 치과가 포함된 플랜도 있으나 받는 데가 드물거나, 갖가지 구실로 치료를 승인해 주지 않으려 한다.

지난 1965년 메디케어 플랜이 처음 소개됐을 때 일체의 치과 혜택은 제외됐다. 예산 문제와 메디케어에 포함될 경우 수가 하락을 걱정한 치과의 그룹의 반대가 직접 이유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2년 전 기후변화 대책 등이 포함된 광범위한 예산안 패키지에 다시 치과 보험을 포함시켜 의회에 보냈으나 같은 이유로 무산됐다. 치과는 특히 예방에 방점이 찍혀 있다. 예방에 실패하면 전적으로 개인 책임이자 부담으로 돌아온다.

해결책은 열심히 ‘치카치카’ 하는 수밖에 없다. 치아, 치간, 잇몸까지 샅샅이 닦고, 파 내고, 씻어 내야 한다. “한 20분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이라고 치과의사는 말한다. 그 외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현 의료제도 아래서는. 조지 워싱턴 때는 돈은 있어도 의술이 안 돼, 지금은 의술은 돼도 돈이 안 돼 미국의 치통은 계속되고 있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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