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청실홍실 엮으려면

2024-06-18 (화) 안상호 논설위원
크게 작게
신문 교육면을 볼 필요가 없게 되면 홀가분하다는 부모가 많다. 자녀의 대학 문제가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학은 축하해도 졸업은 묻지 않는 게 예의다. 대학생활이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다 거친 후 직장을 잡으면 이제 끝? 아니다. 다음에는 결혼 문제가 있다.

얼마 전 청실홍실 모임에 갔다. 13년째, 25회를 넘긴 결혼 소개 모임이다. 가톨릭 종신부제 협의회가 주최하고, 사제협의회 등이 후원하지만 참가자의 종교는 관계가 없다.

모임에 가서 우선 놀란 것은 신청자들의 이른바 ‘스펙’이었다. 교수, 박사, 의사 등 전문직뿐 아니라, 이미 규모 있는 비즈니스를 하는 이도 많았다. 참석한 부모들의 소박한 자녀 소개는 인상적이었다. 자식 자랑에 많이 서툴렀다. 예컨대 “집은 있어요. 근데 페이먼트는 해야 돼요.” 잔잔한 웃음이 퍼졌다. 누가 페이 오프 된 집을 결혼 조건으로 걸었나? 플로리다에서 온 부부도 있었다. 문제는 대부분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은퇴 의사인 김재동 종신부제, 시인 정찬열씨가 꾸준히 하고 있는 일이다. 따로 성혼료 등이 없는 말 그대로 봉사다. 그 일이 만만치 않다. 가톨릭 이름을 걸고 하는 행사, 자칫 잘못되는 일이 있으면… 학력, 경력, 질환, 심지어 초재혼 여부도 말과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상대와의 연결에 그친다. 사실 여부는 본인들끼리 만나면서 알아볼 일. 이번 모임 참가자 이력서를 다음 번에 넘기지 않는다. 성혼 여부도 모른다. 감사하다며 인사를 전해오지 않는 한.

김 부제의 개인 경험이 이 일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삼남매 중 막내는 제 짝을 찾아왔다. 나머지 아들과 딸은 가톨릭 단체를 통해 연을 찾았다. 의사인 아들은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미술 전공인 딸은 결혼 후 맞벌이를 생각해 난색을 표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다는 사위를 만나 잘 살고 있다.

이런 결혼에는 걸림돌이 있다. 우선 자녀들이 부모의 개입을 싫어한다. ‘사생활 침해’라며 거부감을 보이거나, 이런 모임에 갔다면 자존심 상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청실홍실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도 한다. 동거는 하되 결혼은 회피하는 풍조도 문제다.

프랑스는 결혼과 동거의 중간 형태가 법에 보장돼 있다. 시민연대계약(PACS), 세제와 자녀 양육 등에 복지 혜택은 결혼과 같지만 혼인의 구속력이 덜하다. 원래 동성 파트너를 위한 제도였으나 지금은 절대 다수가 이성 커플들. 결혼 보다 인기 있고, ‘이혼율’은 낮은 반면 자녀 출생률은 비슷하다.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과도한 결혼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한국은 ‘3포 세대’라는 말이 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젊은이들의 암울한 현실을 말하는데, ‘초식남’ ‘건어물녀’ 라는 말도 나왔다. 남가주의 높은 주거비는 결혼의 발목을 잡는 요인 중 하나지만 그래도 한국 보다야 훨씬 낫다. 미국은 선택의 폭이 넓다.

결혼에는 적령기가 있다. 자녀 출산과 사회적 환경 등을 고려하면 그렇다. 성혼률을 높이려면 혼기에 대한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결혼 의지와 열망이 있는 때를 적령기로 생각하는 쪽으로.

사랑처럼 결혼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눈이나 마주쳐야지.” 노랫말도 있지 않은가? 70년대 후반, 80년대초쯤이 혼기였던 여성 중에는 독신이 많다. 당시 센서스를 보면 원인이 읽힌다. 그 연배 미국의 한인 여성이 남성의 2배 가까이 많았다. 타인종 결혼에 대한 생각이 지금 같지 않았던 데다, 신랑감을 한국서 수입해 오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인식이어서 혼인의 기회가 적었다.

소설가 박계상씨는 10여년 전 청실홍실을 통해 약사 며느리를 얻었다. 아들은 타주에 있던 예비 며느리와 1년 장거리 연애를 한 후 결혼에 성공했다. 그는 재혼 모임도 있었으면 한다. 필요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청실홍실의 슬로건은 ‘만남은 은총.’ 이런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상 드려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다.

<안상호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