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은 걷는 모습부터 불안불안 해 보인다는 사람들이 있다. 후보 사퇴 압박이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으니 거취는 마지막까지 지켜봐야 할 듯하다. 재출마는 노욕이라는 의견이 대세인 듯하다. 며칠 전 유세 도중 큰 일을 당할 뻔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것과는 별개로 선거가 아무리 인품 경연장이 아니라고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후보라면 법정에도 뭐 좀 그럴듯한 일로 불러 다녀야지, 이건 완전 파렴치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미국정치를 잘 모르는 한인들 사이에서도 “미국도 이렇게 사람이 없나”라는 한탄이 들린다. “미국도”라는 말 앞에는 ‘한국뿐 아니라’라는 말이 생략돼 있다.
정치는 미국이라고 한국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한 국회의원이 건배사에서 “줄을 잘 서자”고 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미국서도 정치는 우선 ‘줄’이다. 줄을 잘못 서면 주 의사당의 방 배정에서부터 차별을 받는다고 한다. 당 실세에게 밉보인 의원에게는 후미진 구석방이나, 화장실 바로 건너편 방을 준다는 것인지 몰라도 아무튼 그렇다고 한 정치인은 전했다.
고인 물을 퍼내고 새 피를 수혈해야 할 필요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임기 제한제가 있다. 캘리포니아는 주 의원, LA 시의원과 카운티 수퍼바이저는 세 차례, 12년 이상 할 수 없다. 주지사와 LA, 샌프란시스코 시장 등도 재선이 끝이다. 전문 정치꾼들에게는 그러나 이 임기 제한제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주 의원, 시의원, 카운티 수퍼바이저 등을 돌아가며 하면 된다.
이런 ‘꾼’일수록 부패에 연루되는 일이 많다. 수뢰 혐의로 쇠고랑을 차는 시의원 등 고위 공직자를 드물지 않게 보게 된다. 일부 LA한인 비영리단체들은 이런 이들에게 줄을 선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전형적인 모리배들로 보이는데 그래도 거기 줄을 대야 뭐가 된다는 변명을 들은 적이 있다.
선출직 공직자가 되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구직행위다. ‘수입이 괜찮은 안정된 직업(임기 내에는)’을 갖는 것이다. 정치인 두 어 사람에게 이런 토로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솔직함에 어쩐지 더 신뢰가 갔다. 정치는 얽히고설킨 사회적 욕망과 첨예하게 충돌하는 벼라 별 이해 관계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일이다. 이 일에 재능이 있고, 적성에도 맞는 사람이 있다. 유권자들은 이 ‘골치 아픈 일’을 이들에게 맡겨 공공 선이 추구될 것을 기대한다. 지나치게 나이브하고 고색창연하게 들릴 지 몰라도.
정치판에 법률가가 정도 이상 많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30여년 전 다이아몬드 바 시의원에 출마했던 한 한인 인사는 당시 시장과 다른 시의원들이 그의 선거를 대신해 줬다고 했다. “시의회에 더 이상 변호사는 필요 없다. 당신 같은 엔지니어가 들어와야 한다”. 57번과 60번 프리웨이가 만나는 이 지역은 예나 지금이나 교통정체가 숙제. 변호사 보다는 엔지니어링 회사를 운영하던 그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후에 연방 하원의원도 지냈다.
이런 미국 정치판이 한국과 확연히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연방 의원이나 주 의원 등 정치인 중에 기자나 방송 앵커 출신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명 저널리스트는 미국에도 많으나 이들이 의원이나 고위 관료로 변신한 예는 찾기 힘들다.
얼굴이 알려지고, 이름만 좀 났다 싶으면 속속 정치판에 뽑아 쓰는 한국과는 다르다. 불러만 주신다면… 어제의 방송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냉큼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전에는 신문 쪽에 이런 일이 많더니, 요즘은 방송이 대세다. 특히 TV 앵커는 날개 돋친 듯하다. 지난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정당인으로 변신한 전직 앵커는 두 손으로 꼽아도 모자라지 않나 싶다.
진행했던 보도 프로그램은 이들의 얼굴 팔이 장으로 이용됐다. 이를 발판으로 정치판으로 튀었다. 그렇지 않아도 권언 유착은 한국사회의 묵은 문제 중 하나다. 언론이 취재원이기도 한 권력기관과 온갖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니 이른바 ‘레거시 언론’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일부 방송국 사람들의 직업 의식이 아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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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