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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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탄핵

2024-12-17 (화)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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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실패한 친위 쿠데타, 계엄이었다. 탄핵은 정점으로 치닫던 한국사회의 양극화 갈등 때문에 언젠가는 우려되던 일이기도 했다.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은 북한 김여정의 담화에 나오는 말이 아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반국가 세력’을 지칭한 대통령 말씀이다. 계엄의 뒤에는 뼈에 새겨진 듯한 이런 증오가 있었다.

포고령은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으나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총 보다 빠른 소셜 미디어 시대에 신문, 방송 통제가 무슨 대단한 효용이 있을 거라고. 군사독재 시절 군인과 그들의 손자 뻘인 MZ 세대 계엄군의 차이를 모르는 낙후된 권력, 그들의 인지 장애적인 발상이 읽혔다. 계엄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 침탈은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돼야 보수 든, 진보 든 활동할 공간이 있다. 계엄이 떨어지면 총검이 법이 된다. 군홧발과 개머리판 세상이 되는 것이다. 경험해 보지 않았는가. 당했으나 잊었는가. 아니면 고민 없이, 헌신 없이 역사에 무임승차한 얌체여서 이 세계는 모르는가.

국가 폭력이 어느 폭력보다 잔혹하다는 것은 역사적 경험이다. 계엄은 대표적인 국가 폭력의 하나다. 사람은 폭력과도 함께 살아야 하지만 요즘 시대에 제대로 된 어느 나라에서 계엄인가. 계엄 발표와 함께 한국은 단숨에 미얀마 수준의 나라가 됐다. 필리핀이 한국에 있는 자국민을, 전쟁 중인 이스라엘이 한국 여행의 안전을 걱정하고 나섰다. 중국, 러시아 같은 비민주적 리더십을 비판할 도덕적 근거는 사라졌다.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겪다가 잠시 코리아 프리미엄을 누리는가 싶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한국의 또 다른 민낯이 드러난 순간의 열패감이라니. 지금 같은 때 밖에 나와 사는 우리 같은 사람, 760만을 헤아린다는 해외동포 생각도 좀 해달라는 말은 너무 한가한가. 눈에 뵈는 게 없을 사람들에게.


탄핵된 대통령의 사회적 성장은 배타적인 독점권력 안에서 이뤄졌다. ‘일정 수준의 관용’이나 타협을 학습할 기회를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다. 그보다는 ‘네 이놈, 네 죄를 알렸다’가 통하는 데였다. 한국에서 기업하는 사람, 정치하는 사람 중에 이 말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일개 장관이-” 직전 여당 대표가 검사 시절 법무부 장관에 대해 했다는 이야기다. 오만과 교만이 넘치는 이 말은 그러나 허세가 아니었다. 말 대로 법무 장관 중 한 명은 탈탈 털려 감옥에 가고, 멸문지화 수준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전현직 대통령도 감옥에 보냈다. 선택적 정의가 당연시되는 조직 문화, 잘리고 나와도 철 밥통이 보장되는 희한한 곳.

탄핵 대통령은 이런 조직에서 군부의 전두환 같은 존재로 비쳤다. 나름 신망도, 따르는 사람도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학벌 따지고, 고시 좋아하고, 판검사 부러워하는 한국인들, 왜곡된 영웅 스토리에 혹한 유권자들이 그를 이 자리에까지 올렸다. 자업자득, 국민의 선택이었다. 때 마다 언론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힘있는 것들과 야합하고, 국민을 호도하고, 눈 멀게 한 공이 크다. 극단의 엉터리 소셜 미디어들이 활개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됐다.

이번 탄핵과 계엄은 역사가 교훈이 되지 못한 사례였다. 역사는 한 번은 비극, 또 한 번은 희극으로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지만 이번은 희극에 가깝다. 상식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한 대표 선수, 마땅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 이른바 보수의 절망이 읽힌다. 그 반대쪽은 어떤가. 주렁주렁 달린 혐의들은 검찰 정권이 달아 놓은 것이라고 해도, 대표 주자는 품격에서 바닥을 드러냈던 인물이다. 독선, 강압의 이미지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지레 ‘윤석열 시즌2’를 걱정하게 된다. 이번에는 야당 발일 것이다. 괜한 기우일 것을 바라지만.

한국은 이제 주역이 바뀌어야 한다. 영혼이 자유롭고, 세계 어디서든 당당한 젊은이들, 대화가 가능하고, 남도 좀 생각할 줄 아는 K 컬처 주인공들이 정치에도 주도 세력이 되어야 한다. 태극기와 함께 개딸은 가라. 바뀐 주역들이 정치와 언론 풍토를 바꾸는 날을 기대하며 희망을 갖고자 한다.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축, 대한민국!” 이번에도 그대들이 해냈다. 무너지던 정의를 지키고, 일으켜 세웠다. 12월 날씨에 묵묵히 한강 다리를 건너 여의도에 모여 들었던 당신들, 시위를 축제처럼 이끌었다는 당신들, ‘시위도 밥 먹고’ 사이트를 만들어 쏟아진 선결제 카페의 위치와 실시간 제품 재고를 알려주기도 했다는 그대들이 피 흘리며 지켜온 한국 민주주의를 이번에도 지켜 냈다. 깊은 감사의 마음을 밖에서 전한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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