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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나 보수 문제가 아니다

2021-05-20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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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대통령이나 수상이 부패혐의로 조사받고, 기소되고, 심지어 감옥까지 가는 예는 드물지 않다. 정치 후진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얼마 전 재임 당시의 부패와 독직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프랑스 현대사에서 전직 대통령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10년 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공금횡령 혐의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으나 집행유예였던 반면, 사르코지에게는 집행유예 2년에 징역 3년이 선고됐다.

항소심에서 1심 형량이 유지된다고 해도 집행유예 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1년은 감옥 보다 가택 연금형으로 대신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있다. 하지만 사르코지는 마크롱 현 대통령의 뒤를 이을 유력 차기 대선주자로 떠오르던 중이어서 정치적 파장이 크다.


미국은 어떤가. 현재 뉴욕 검찰은 트럼프의 불법거래 여부 등을 수사하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 팔레스타인과 전면전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이스라엘의 현직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도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 뇌물수수, 배임,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이다. 가자 지구의 무차별 공습은 정치적인 배경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네타냐후는 ‘검찰 쿠데타’ ‘마녀 사냥’ 등의 말로 맞서고 있으나, 이스라엘 검찰이 정파적이라는 말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 대학의 정치학자들이 공동 저술한 한 논문에 의하면 지난 1885년부터 2004년 사이에 민주주의로 전환된 국가의 지도자 4명중 한 명은 부패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착근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남미로 눈을 돌리면 어지러울 정도다. 남미는 정파간의 갈등이 보수와 진보의 대립 정도가 아니다. 어느 쪽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국가의 정체성이 좌우로 완전히 핸들을 돌리게 된다. 지난 3월에는 볼리비아의 직전 대통령 자니네 아녜스가 쿠데타 혐의 등으로 체포됐다. 지난 2019년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축출하고 권좌에 올랐던 그녀는 좌파 정권이 들어서자 정반대 처지가 됐다.

브라질의 상황은 더 극적이다. 구레나룻이 덥수룩 하던 룰라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좌파 정치인인 그는 구두닦이 소년에서 대통령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룰라는 전직 대통령 신분이던 지난 2018년 뇌물수수 혐의로 수감됐다. 정치 재판이라는 여론이 많았다. 바로 다음해에는 그를 감옥으로 보냈던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 역시 수 백만 달러의 뇌물혐의로 체포됐다.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 때 개막선언을 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브라질에서는 수 년째 반부패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1년 사이에 두 전직 대통령을 기소한 검찰은 같은 팀이었다. 여기서 정점을 찍은 것은 반부패 팀을 이끈 검찰 책임자 또한 부패혐의로 기소됐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대중에게는 두 가지 메시지가 전달된다. 하나는 법 앞의 평등,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그 사회가 부패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이 생각나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아니면 외람된 일인가. 서울에서 다니러 온 사람에게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쉽지 않은 게 한국의 부동산이다. 한국에 땅 한 평 없는 사람에게는 어렵고 복잡하기만 하다. 건드리면 다치는 것이 성역이라면,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성역이어야 겠다는 생각이다. 건드리는 사람 마다 함께 진창에 빠지기 때문이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합친 LH라는 기관의 직원들이 부동산 투기에 앞장섰다고 했다. 손에 쥐고 있는 독점 정보가 축재의 수단이었다. 정부정책의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 최고위 보좌진도 논란으로 퇴진했다.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법을 만든 후 시행 직전 자기 아파트의 임대료는 규정의 3배 가까이 올렸다고 한다. 브라질 검찰과는 무엇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

적폐 청산을 외치던 여당의 유력인사들도 잇달아 부동산 편법, 탈법 사례가 드러나고, 이번에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에 당선된 야당 후보들 역시 끝까지 부동산 논란에 끌려 다녔다. 한 때 쇠죽 끊듯 하던 한국의 부동산 투기 시비는 어느 새 꼬리를 내렸다.

국회 청문회에 나오는 고위 공직자 후보들의 문제는 이제 해외에 사는 사람들도 외울 정도다. 위장전입, 다운 계약서, 논문 표절 등은 기본이고, 여기에 기타 의혹들이 더해진다. 전 정부나 현 정부나 마찬가지였고, 차기 정부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의 병폐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패러다임은 진짜 바뀌어야 한다. 진보나 보수, 어느 정권이냐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문제로 보인다.

<논설위원>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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