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진 1815년부터 제1차 대전이 터진 1914년까지의 100년은 ‘영국의 평화’(Pax Britannica) 시대라 불린다. 이 기간은 영국은 캐나다에서 호주, 인도에서 홍콩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식민지를 거느리고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했다.
근대 이전까지 서유럽 변방의 자그마한 섬에 불과했던 영국은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산업 혁명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산업 혁명은 영국에서 처음 일어난 것일까.
많은 학자들은 1624년 제정된 ‘독점법’을 산업 혁명의 기초를 놓은 역사적 사건으로 본다. 영국은 중세 때부터 개인이 만든 물건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관습법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 왕은 ‘특정인 만든 물건은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내용의 ‘공개장’(letters patent)을 써줬는데 자기 마음에 드는 신하의 재산에 대해 이 문서를 남발하자 의회가 이를 새로 만들어진 발명품에 국한하는 법을 만든 것이다. 영어로 특허를 뜻하는 ‘patent’는 여기서 나온 것으로 라틴어로 ‘열려 있는, 공개된’이란 뜻이다.
이처럼 국가가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면서 영국의 기술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자신이 만든 기술의 혜택을 본인이 누리게 해주지 않으면 기술은 발전되지 않는다. 피땀 흘려 새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남이 애써 만든 기술을 훔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영국 산업 혁명은 일조일석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100년 넘게 축적된 기술 혁신의 복합적 산물이다. 증기 기관을 만든 제임스 와트는 백만장자가 됐고 그 후 수많은 와트가 크고 작은 발명품을 만들면서 영국은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게 된 것이다. 특허와 지적 재산권의 보호야말로 기술 혁신과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며 ‘황금 알을 낳는 거위’임을 알 수 있다. 미 ‘건국의 아버지들’도 특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1789년 연방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1790년 ‘특허법’을 제정한 것이다.
6.25 직후 세계 최빈국에서 지금 10대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에서도 특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특허 출원 건수는 총수로는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 GDP와 인구 비율에 따른 건수로는 세계 1위다. 1등을 좋아하는 것으로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한국인과 한국 언론이 이 어마어마한 업적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1위, 스마트폰 보급률 1위인 IT 강국 한국은 이런 기술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코로나 백신의 지적 재산권 보호를 잠정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매우 어리석고 잘못된 결정이다. 우선 지적 재산권 유예는 백신의 대량 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백신 하나 만드는데 200가지가 넘는 원료가 들어간다. 백신을 개발해 생산하고 있는 회사들도 지금 원료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다. 기술을 공개한다고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또 기술을 풀어줘도 미국 수준의 양질의 백신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나라는 별로 없다. 미국에서 생산된 백신도 제조 및 보관 실수로 폐기되는 일이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백신의 안전성이야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이 우위를 갖고 있는 의료 기술력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이보다 더 결정적인 단점은 지적 재산권 보호를 유예할 경우 이는 나쁜 선례로 남아 추후 백신 개발을 저해할 것이 명백하다는 점이다. 백신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모더나와 화이자가 1년만에 백신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10년 넘게 축적된 기술력에 투자가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온갖 위험 부담을 안고 백신 개발에 성공했는데 그 열매를 정부의 명령으로 빼앗긴다면 향후 누가 열심히 만들려 하겠는가. 백신 회사들은 당연히 반발하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데 법정으로 가면 그 해결에 몇년이 걸릴지 모른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미국 결정에 반대하면서 미국의 수출 규제부터 풀라고 한 것은 백번 지당한 말이다. 미국은 이미 7월말까지 6억회 접종에 필요한 백신을 확보해 놓고 있다. 바이든은 하루 속히 이번 결정을 철회하고 남는 백신부터 가난한 나라들에게 무료로 지원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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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