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우리는 어둠이 필요해/ 휴식이 필요하고 침묵이 필요해/ 밤하늘의 별들을 좀 보아라/ 무엇이 별들을 반짝이게 하더냐?/ 어둠이야/ 어둠이 있기에 별들이 반짝이는 거야/ 어둠을 믿고 별들이 웃고 있는 거야’ (나태주 ‘혼자서도 별인 너에게’ 중에서)
요즘 도심의 야경이 전만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필라델피아, 보스턴, 시카고, 뉴욕, 휴스턴을 비롯한 30여개 미국대도시의 고층빌딩들이 야간조명을 껐거나 조도를 크게 낮췄기 때문이다. 이는 철새들의 이동을 돕기 위한 ‘불끄기’(Lights Out)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매년 봄과 가을에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
조류학회 오두본 소사이어티(Audubon Society)에 의하면 매년 10억 마리의 철새들이 이동 중에 빌딩에 부딪쳐 죽는다. 작년 10월 필라델피아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캐나다에서 중남미로 이동하던 새 1,500마리가 시내 건물들에 부딪쳐 죽은 사건이 있었다.
투명유리로 외관을 마무리한 고층빌딩들은 새들의 ‘공동묘지’다. 낮에는 하늘과 구름을 생생하게 비추기 때문에, 밤에는 밝고 화려한 조명 때문에, 날아가던 새들이 방향감각을 잃고 부딪쳐 추락하는 것이다. 새들은 밤에 별빛과 달빛을 보고 날아가는데 번쩍이는 인공조명이 나타나면 헷갈려서 그 주변을 맴돌다가 부딪치거나 지쳐서 땅에 떨어져 죽는다고 한다.
5월과 10월의 두 번째 토요일은 세계 철새의 날(World Migratory Birds Day)이다. 오두본 소사이어티는 지난 20여년 동안 대도시들에게 봄(3~5월)과 가을(9~10월)에 건물의 조명을 끄거나 줄여달라고 호소해왔다. 그 결과 최근 점점 더 많은 도시와 빌딩들이 이에 동참하고 있으며, 특히 철새의 이동경로에 위치한 텍사스 주 댈러스와 포트워스, 플로리다 주 잭슨빌,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뉴욕시에서도 매년 철새이동의 피크 때는 9/11 ‘추모의 광선’을 켜지 않는다. 위로 쏘아올리는 두 줄기 광선 때문에 일주일 간 110만마리의 이동습성이 달라졌다는 코넬 조류연구소의 보고가 나온 후부터다. 건물이나 기념물을 멋지게 보이도록 위로 쏘는 옥외조명은 대기 중 먼지를 반사하며 어슴푸레한 ‘빛 공해’를 만드는데 미국은 이런 조명에 매년 45억 달러를 소비하고 있다. 따라서 꼭 필요하지 않은 실외조명과 실내등을 끄면 멸종위기의 수많은 새들을 살릴 수 있고, 에너지 절약으로 환경운동에도 동참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빛 공해(light pollution)는 수질오염, 대기오염, 토양오염, 해양오염에 못지않은 심각한 공해다. 1879년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한 이후 지구촌은 수많은 인공조명에 노출돼왔다. 밤하늘이 밝아지자 도시는 별을 잃어버렸고, 생태계는 더 빨리 파괴되고 있다. 철새들만이 아니라 곤충, 어류, 양서류, 포유류, 그리고 식물과 농작물까지 생체리듬 교란으로 크나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인공조명의 영향을 가장 많이 직접적으로 받는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개체수가 많은 곤충이다. 가로등, 외등, 간판, 네온사인으로 인해 사료, 번식, 먹이활동, 포식이 교란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야행성 나방은 전등을 달로 오인해 주변을 날아다니다 지쳐죽거나 포식자에게 잡아먹힌다. 반대로 거미·박쥐·쥐·도마뱀 등 육식 포식자들은 밤에도 밝은 빛 덕분에 훨씬 더 많은 곤충을 잡아먹음으로써 생태계 순환이 깨지게 된다.
해양조류 역시 큰 영향을 받는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에서 바다거북들이 해변에 낳은 알에서 수많은 새끼거북이 줄지어 부화해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달빛 비추는 바다를 향하도록 DNA에 입력돼있는 새끼거북들이 인공조명 때문에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다가 반대쪽 도시로 기어가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이들은 결국 모두 지치고 말라서 죽어버리게 된다.
식물도 예외가 아니다. 가로등 가까이에 있는 작물은 밤에도 광합성이 이루어져 열매는 맺지 못하고 영양생장만 하게 된다고 한다. 또 인공빛은 꽃봉오리 형성과 개화를 방해하고, 벌과 곤충도 혼란을 겪게 되어 수분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부작용을 낳는다.
곤충과 동식물뿐이랴. 사람도 과도한 빛에 노출되면 불면증이 누적되고 생체리듬이 깨져서 불안과 스트레스가 높아진다. 수면부족이 암과 치매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있다.
‘빛 공해’라는 용어는 이미 1960년대에 등장했다. 1980년대부터 이를 줄이려는 운동이 시작됐고, 미국에서는 1992년 이후 여러 주와 수백개 도시에서 빛 공해 방지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갈수록 밝아지고 경쟁적으로 번쩍이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노라면 그런 법이라는게 과연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현대사회에서 빛 공해를 차단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가로등의 조도를 줄이고 산란방지 갓을 씌우는 등의 간단한 노력만으로도 자연생태계 교란을 상당부분 막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제안은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때로 우리는 어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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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