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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여자 가족들

2024-11-20 (수)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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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는 그 자신이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부적합할 뿐 아니라 그가 초고속으로 인선 중인 행정부 내각 후보들의 자질도 딱 그 수준이다. 정치의 목적이 나라의 복지가 아닌 개인의 이익과 복수이고, 각료를 선정하는 기준이 전문성이 아닌 충성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 그의 주변을 둘러싼 여자들의 면면도 정상은 아니다.

첫째로 아내 멜라니아(54).


다시 한번 퍼스트레이디가 될 그녀는 트럼프 2기에는 백악관에서 살지 않을 예정이다. 그는 1기 때도 아들 배런의 교육을 핑계로 남편과 함께 입주하지 않고 한동안 뉴욕에서 생활했었다. 그녀가 백악관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사생활이 극도로 제한되는데다 뉴욕과 플로리다에 훨씬 좋은 집이 있기 때문이다. 맨해튼에는 트럼프타워 꼭대기의 펜트하우스 3개 층을 베르사유궁전처럼 꾸민 초호화 저택이 있고, 팜비치 마러라고의 집은 베드룸 58개, 욕실 33개, 수영장, 스파, 테니스코트, 골프장까지 갖추고 있으니 백악관이 하꼬방처럼 여겨질 만도 하다.

멜라니아는 지난주 조와 질 바이든 대통령 부부가 대통령직 인수인계를 위해 트럼프 부부를 백악관으로 초대했을 때도 가지 않았다. 최근 발간한 회고록(‘Melania’) 일정 때문에 바쁘다고 거절한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당선인을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며 영부인 간의 상견례 자리이기도 하다. 2016년 트럼프의 첫 당선 때는 미셸 오바마의 초청으로 멜라니아가 백악관에서 함께 티타임을 가진 바 있다. 그러나 2020년 대선 때는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여 전현직 대통령부부의 백악관 회동이 성사되지 않았고, 이번에는 차기 영부인의 불참으로 반쪽 회동이 이뤄진 것이다.

멜라니아의 입장은 단호하다. 대통령 직을 수행하는 건 남편이므로 자신이 꼭 함께 백악관에 상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그녀는 “한번 퍼스트레이디를 해봤기 때문에 경험과 지식이 있어서 불안하지 않다. 국빈초청 의전이나 백악관 주요행사 때만 출근해서 영부인 역할을 하고 퇴근하면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첫 임기 때도 ‘은둔의 영부인’으로 불렸던 그녀가 이제는 아예 ‘파타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앞으로 4년간 우리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남편의 곁을 지키지 않는 독립적인 퍼스트레이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 부부는 여러 면에서 전통의 파괴자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둘째, 트럼프의 맏며느리 후보인 킴벌리 길포일(55).

장남 트럼프 주니어의 8살 연상 약혼녀이며 시어머니가 될 멜라니아보다 한 살 더 많은 그녀는 캘리포니아주 검사 출신에 폭스뉴스의 간판앵커였던 맹렬 여성이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첫 남편이 민주당의 대권 잠룡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다는 사실. 두 사람은 뉴섬이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이던 2001년 결혼했다가 5년 후 이혼했다. 그리고 길포일은 석 달 후 에릭 빌렌시라는 가구재벌 상속자와 결혼했다가 3년 후 또 이혼했고, 2018년 기혼남이던 트럼프 주니어와 불륜에 빠져 연인이 되었다. 민주당의 대표주자 남편을 떠나자마자 극우 공화당원이 된 길포일은 2020 대선 때부터 트럼프 캠프의 모금 책임자이자 법률고문으로 최전선에 나섰고, 이번 대선 때도 극렬 마가(MAGA)로서 많은 활약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며느리가 되려는 야망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약혼한지 4년이 돼가도록 결혼 소식은 없고, 얼마 전부터는 트럼프 주니어가 연하 여성과 데이트 중이라는 소문이 플로리다 사교계에 파다하기 때문이다. 사실 너무 도발적인 외모에다 연설할 때면 소리를 꽥꽥 지르는 길포일은 트럼프의 가족들 사이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라 얼마 안 있어 팽 당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세 번째로 트럼프의 둘째 며느리 라라(42).


트럼프의 당선 직후부터 그녀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 그 이유는 트럼프가 차기 국무장관으로 내정한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주)의 자리를 라라에게 물려줘야한다는 의견이 공화당 내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공석은 트럼프와 겨뤘던 론 디샌티스 주지사가 임명하게 되는데 그 압력이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라라는 2021년에도 상원의원직 도전 얘기가 나왔을 정도로 정치야심이 큰 여성이다. 문제는 아무런 정치 경력도 전문성도 없다는 것.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나와 TV프로듀서로 일하다가 2014년 트럼프의 차남 에릭과 결혼한 라라는 지난 3월 트럼프낙하산으로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공동의장이 된 것이 경력의 전부다. 트럼프는 선거자금 총지휘를 맡길 만큼 둘째 며느리를 총애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힘을 입어 이제 상원의원으로 등극하려는 것이다. 심지어 2028년 대선에 출마, 시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추측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트럼프는 1기 때도 정치 경력이라고는 전무한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쉬너를 대통령 선임고문과 백악관 선임보좌관이라는 최고위직에 앉히고 나라를 가족기업처럼 운영했다. 이제 그 자리는 장남 트럼프 주니어와 차남 에릭이 대신하고 있으며, 아버지를 꼭 닮았다는 막내 배런(18)도 슬슬 몸을 푸는 듯한 모양새다. 미연방법은 대통령 친인척의 공직 기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트럼프 가족은 이런 규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놀랍게도 정가에서조차 이를 문제 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파렴치한 트럼프의 패밀리 비즈니스는 이제 부동산업에서 ‘정치업’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그리고 그 대가는 그를 선택한 미국인들이 치러야할 것이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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