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샤나한(39, Nicole Shanahan)이란 이름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다. 대체로 생소할 테지만 그녀는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전 아내였고, 얼마 전 대선 캠페인을 접고 트럼프 수하로 들어간 로버트 케네디의 러닝메이트였다. 지난주 워싱턴포스트는 요즘 갑자기 설치고 다니는 이 여자에 대해 상세히 보도했는데 읽어보자니 이런 ‘막장 신데렐라’ 스토리가 따로 없다. 불우한 가정 출신으로 돈 많은 남자들을 잇달아 유혹해 억만장자가 되었고, 그 돈으로 극우파 정치계의 스타로 떠오른 희대의 요부라 해야 할까.
샤나한은 케네디처럼 민주당이었으나 탈당해 무소속 부통령 후보가 되었고, 지금은 공화당 트럼프 캠페인의 전사로서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를 ‘악’(evil)이라 칭했던 그녀가 완전히 돌변해 마가(MAGA) 운동과 나란히 마하(MAHA)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마하는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ke America Healthy Again)라는 뜻으로, 자신을 웰빙전문가로 자처하며 내세운 건강 및 환경운동이다. 그녀는 심지어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설 의지를 밝힌 적도 있다.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거듭하는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여러 매체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니콜 샤나한은 중국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극심한 빈곤 속에서 부친의 양극성장애와 알코올중독, 가정폭력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2세 때부터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악착같이 공부한 그는 워싱턴주 퓨짓 사운드 대학을 나와 산타클라라 법대를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되었고, 실리콘 밸리에서 특허관련 업체(ClearAccessIP)를 설립했다. 수천달러를 갖고 시작한 회사가 어려움에 빠질 때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자자를 모아 버텼고, 그중 한 사람인 유대인 금융가 제러미 크란츠와 2014년 결혼에 이르게 된다. 이야기는 이때부터 막장드라마가 된다.
결혼식 한달 전 샤나한은 친구들과 처녀파티(bachelorette party)를 하려고 레이크타호의 요가페스티벌에 갔는데 수영장에서 놀다가 세계 7위 부호 세르게이 브린을 만나게 된다. 당시 샤나한은 28세, 브린은 40세로 아내와 별거중인 상태였다. 별거 이유는 그가 어린 직원과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 당시 브린은 자신에게 파킨슨병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매일 부어라마셔라 파티를 열고 여자들과 놀아나며 방탕한 나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빠졌고 함께 사막축제 ‘버닝맨’에 다녀오는 등 신나게 놀다가 샤나한은 결혼식 하루 전에야 돌아왔다. 하지만 크란츠는 곧 신부가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혼인 27일 만에 사기결혼이라며 무효소송을 냈으며 이듬해 이혼이 마무리됐다.
이제 브린과 샤나한은 노골적으로 사귀기 시작했고, 브린의 주변에서는 둘 사이를 만류하며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특히 친구인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대놓고 반대했는데 이 때문에 두 사람이 멀어지고 가족들 간의 왕래도 끊겼으며 구글 상위 층에 긴장감이 형성될 정도로 험악했다는 것이 내부의 전언이다.
샤나한에게 푹 빠졌던 이 시기에 브린은 중요한 가족행사, 예를 들면 딸의 생일파티라든가 동생의 결혼 리허설디너에조차 참석하지 않았고, 집에 자주 드나들던 전 아내와 아이들도 못 오게 하는 등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재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던 그가 2018년 샤나한과 결혼식을 올렸고 그 직후 딸이 태어났다.
그런데 벌써 이 때쯤부터 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모양, 특히 팬데믹을 지나면서 서로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헤어지게 된 원인은 샤나한이 브린의 오랜 친구이며 세계 1위 부자인 일론 머스크와 혼외정사를 가진 것이었다. 처음에 두 사람은 이를 부인했지만 나중에 머스크가 한 파티에서 공개적으로 브린에게 용서를 빌음으로써 이를 인정했다. 분노한 브린은 갖고 있던 3억6,600만달러 상당의 테슬라 주식 모두 팔아치웠고 즉시 이혼소송을 냈으며 2023년 5월 이혼이 끝났을 때 그가 샤나한에게 준 돈은 무려 10억 달러에 이른다. 한 지인은 “브린은 그녀가 혹시라도 자신을 해칠까봐 큰돈을 떼어주고 끝낸 것인데 그 돈으로 부통령 후보 자리를 사고 이 나라를 해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브린과 샤나한 사이에 태어난 딸 에코(8)는 18개월 때 자폐증 진단을 받았으며 이후 샤나한은 딸이 백신접종 때문에 자폐증에 걸렸다며 백신 음모론자가 되었다.
지금 트럼프 주위에는 이런 인간들이 모여들어 어떻게든 백악관과 행정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있다. 백신 음모론자인 케네디와 샤나한은 의료정책 분야에서 권력을 쥐려하고 있고, 한때 트럼프의 공공연한 적이었던 머스크는 갑자기 그의 선거유세에 돈을 물 쓰듯 하며 배꼽까지 내놓고 뛰면서 트럼프 2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바라고 있다. 테슬라 전기차 사업은 물론 우주사업 스페이스X와 소셜미디어 X 등 그의 기업들이 특별 혜택을 받으려는 속셈이다.
지난주 미국의 노벨상 수상 과학자와 경제학자 82명이 카말라 해리스를 지지하고 트럼프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트럼프의 전 행정부 관리들도 앞 다퉈 그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를 경고하고 있다. 슬프고 답답한 사실은 트럼프의 ‘악’이 이렇게 명약관화한데도 이성적 판단을 멈춘 미국인들이 거의 절반에 이른다는 점이다.
2024 대선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아직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과 이 나라를 위해 중요한 선택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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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