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용재 오닐 @ 타카치 쿼텟

2026-02-04 (수) 12:00:00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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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 오닐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비올라가 이렇게 아름다운 악기인지 몰랐다고, 그의 비올라 소리는 가슴을 울린다고, 마치 혼을 어루만지는 듯하여 눈물이 난다고….

그렇게 아름다운 리처드 용재 오닐(Richard Yongjae O’Neill)의 음악 연주회가 지난 주말 브로드 스테이지에서 열렸다. 유명 피아니스트 개릭 올슨(Garrick Ohlsson)과의 듀오 리사이틀이었다. 프로그램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와 라흐마니노프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등,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곡들로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용재 오닐은 지난 11월에도 브로드 무대에 섰다. 그때는 타카치(Takacs) 쿼텟의 멤버로서 동료들과 함께 근대와 현대의 현악사중주 레퍼토리를 들려주었는데, 짜릿할 정도로 완벽한 타카치 사운드에 다시 한번 전율했던 연주회였다.


찐 팬으로서, 가까이서 열리는 용재의 콘서트는 빼놓지 않고 찾아다니는 편이다. 그가 실내악단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수석 비올리스트였던 시절엔 일년에도 몇 번씩 지퍼홀 무대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누구에게나 그리움 속에 흘러가버린 시간과 경험들이 있다.

15년 동안 한국, LA, 뉴욕에서 역동적인 활동을 펼치며 가속도 인생을 살았던 용재는 2020년 세계적인 현악사중주단 타카치의 비올리스트로 합류하면서 새로운 음악여정을 시작했다. 그 전까지 앙상블 ‘디토’의 음악감독, UCLA 음대교수, 링컨 체임버뮤직 소사이어티와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멤버로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던 화려한 삶을 다 내려놓고 떠난 여정이다.

타카치 쿼텟은 BBC뮤직매거진 선정 ‘100년간 가장 위대한 10대 현악사중주단’, 클래식음반 전문지 그라모폰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명문 악단이다. 용재 오닐은 “어릴 때부터 음반을 즐겨 들었던 이 위대한 쿼텟의 멤버가 된 것은 현악연주자로서 꿈이 실현된 것”이라고 말해왔다.

지난해 창단 50주년을 맞은 타카치 쿼텟은 다양한 기념공연과 행사를 가졌는데, 그중에서도 “헝가리의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을 찾아 악단이 처음 시작된 바로 그 방을 방문하고, 창립자 가보르 타카치를 직접 만난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었다.”고 용재는 전했다. 현재 남아있는 오리지널 멤버는 첼리스트 안드라시 페예르 뿐으로, 그 역시 올여름 51년의 연주활동을 마무리하고 은퇴하고 나면 차세대 연주자들이 타카치의 전통을 이어가게 된다.

“현악사중주단은 살아 숨 쉬는 유기체와 같고, 함께 연주한다는 것은 서로를 믿고 존중하며 소통하는 아주 친밀한 작업”이라고 설명한 용재는 쿼텟 활동이 워낙 바쁘다보니 솔로 연주에 나설 시간이 많지 않지만 매년 겨울에 한국을 찾아 연주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지난 12월에는 피아니스트 제레미 덴크와 서울, 성남, 부천, 세종에서 리사이틀 투어를 함께 했고, 지금은 개릭 올슨과 함께 LA를 시작으로 샬롯빌, 세인트폴, 뉴욕에서 투어하고 있다.

많이 알려진 대로 리처드 용재 오닐은 꿈의 그래미상, 에미상,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모두 수상한 유일한 비올리스트다. 비올라란 악기로 유명해진 연주자도 아마 그가 처음일 테고, 이 현악기의 숨은 매력을 처음 한국인들에게 소개하며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1세대 클래식 아이돌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화려한 고음역의 바이올린과 굵고 부드러운 저음역의 첼로 사이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비올라는 그 소리가 튀어나오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음악에서 조연에 머물곤 한다. 하지만 바이올린보다 커서 울림이 깊고, 소리가 더 진하고 풍부하며 어두운 음색을 내는 비올라의 아름다움은 용재 오닐의 연주로 활짝 피어나 우리의 귀를 열고 음악적 지평을 넓혀주었다.


그의 연주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비감은 외로웠던 성장기의 아픔이 그의 음악DNA에 새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워싱턴 주의 시골에서 지적장애를 가진 한인 입양여성의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 양 조부모의 사랑과 헌신 덕분에 어렵사리 음악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유일한 동양계 소년으로서 겪었을 숱한 차별과 소외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감수성이 남달리 예민한 그가 매일의 상처를 삭히고 이겨낼 수 있었던 수단이 비올라였다. 그의 연주가 언제나 아프도록 감동적인 것은 그러한 자신의 모든 것을 음악 속에 온전히 담아 내어주기 때문이다.

현재 콜로라도 볼더를 거점으로 세계무대에서 연주하며 콜로라도 대학에서 가르치는 그는 올여름 산타 바바라로 돌아와 ‘뮤직 아카데미 웨스트’에서 타카치 쿼텟과 함께 8주 동안 현악사중주 세미나를 이끌고 교수로도 활동할 예정이다.

남가주에서의 삶이 그립고, 다시 브로드 스테이지에 서게 될 날을 기대한다는 용재의 나이 벌써 47세. 자기는 이제 ‘오빠’에서 ‘아저씨’가 되었다고 농담한다. 무대에서는 아직도 멋지고 날씬한 ‘오빠 스타일’인데, 가까이서 보니 조금은 ‘아저씨 티’가 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의 얼굴에 세월의 켜와 골이 깊어질수록, 그의 비올라 소리는 더욱 더 아름답고 깊어질 것임을.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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