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을 많이들 맞으셨으리라 믿는다. 주변에서 백신을 한 번이라도 맞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예약과 접종이 쉬워졌고, 덕분에 캘리포니아 주는 본토에서 가장 낮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률을 유지하고 있다.
CDC에 의하면 4월26일 현재 미국에서 1회 이상 주사를 맞은 성인은 1억4,000만 명(54%), 2회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9,500만 명(37%)에 달한다. 성인 2명 중 1명이 최소 한번 백신을 맞았고, 3명 중 1명은 접종을 끝낸 셈이다. 이대로만 가면 머잖아 집단면역에 도달하고 팬데믹이 종식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집단면역에 도달하려면 인구의 70∼85%가 면역력을 가져야하는데 50~60% 정도에서 정체현상을 보일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백신을 맞으려는 사람들은 거의 다 맞았고, 이제 남은 건 접종을 망설이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들은 세 종류다. 접종하러 갈 시간이 없거나 상황이 안 되는 사람, 백신 효과나 부작용을 우려해 망설이는 사람, 그리고 “절대 안 맞겠다”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류가 ‘신념’을 가지고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주로 공화당원, 트럼프추종자, 극우파, 보수기독교인, 흑인들인데 이 중에서도 가장 힘든 사람들이 백인 공화당원들이다. 상당수가 트럼프추종자 및 극우파와 겹치는 이들은 마스크쓰기나 거리두기도 하지 않고 코로나 팬데믹이 가짜이거나 과장됐다고 믿는 사람들로,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44%가 백신을 맞지 않을 작정이라고 답했다.
이런 골수 공화당원들을 설득하려면 공화당 지도자들이 나서서 백신접종을 독려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말하자면 도널드 트럼프가 나와서 한마디 하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재임시절 백신 생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자기가 아니었다면 ‘아름다운 주사’는 절대 개발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수없이 자화자찬했다. 그런 그가 왜 접종을 권장하지 않을까?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입원까지 했고, 백악관을 떠나기 전 ‘조용히’ 주사를 맞았으면서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초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투표한 사람들에게 접종을 권유한다”고 말했지만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내놓은 코멘트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두 번째 강적은 복음주의와 오순절 크리스천들이다. 특히 ‘주님’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백신에 대한 믿음은 떨어진다. 미국 내 백인 복음주의 신도들은 4,100만명에 달하는데 이중 45%가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답한 것으로 퓨리서치 조사에서 나타났다.
이들은 과학을 믿지 않고 하나님만이 궁극적인 치료자요 구원자이며, 병에 걸리거나 낫거나 살고 죽는 것이 모두 주님의 뜻이라고 믿는다. 사자굴이나 풀무불에 던져져도 하나님의 사람은 기적적으로 ‘박해’를 견디고 살아남는다는 것이다.(구약 다니엘서의 내용) 이건 종교이며 신앙이기 때문에 뭐 방법이 없어 보인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교계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나섰는데 효과는 지켜봐야할 것이다.
‘프라우드 보이즈’ ‘부갈루’ ‘큐어넌’ 등의 극우파는 백신 음모론의 강력한 전파자들이다. “코비드-19 백신은 인류를 쓸어버릴 대량파괴무기”라든가 “의사와 간호사들은 훗날 전범자들로 재판받을 것”이라는 음모론을 퍼뜨리며 백신의 부작용과 사망사례만을 과장해서 퍼뜨린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고 난 후 동력을 잃은 이들은 가능하면 집단면역을 지연시켜 정상화 속도를 늦춤으로써 정부에 대한 신뢰를 걷어내려는 것이 목적이다.
흑인들은 좀 경우가 다르다. 전통적으로 흑인들은 예방접종을 꺼리는데 그 배경에는 ‘터스키기 매독연구’가 있다. 앨라배마 주 터스키기(Tuskegee)에서 1932년부터 40년 동안 정부 주도하에 행해진 끔찍한 생체실험이다. 당시 공중보건국은 매독에 걸린 가난하고 문맹인 흑인 400여명에게 무상치료를 해준다며 비밀리에 병의 진행과정을 연구했다. 1947년 페니실린 치료제가 나왔지만 투여하지 않았고, 만성적이며 고통스럽고 치명적인 병의 진행을 지켜보았다.
이 사건은 1972년 한 양심적인 학자가 언론에 제보함으로써 폭로됐고,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생존자 5명과 피해가족들을 백악관에 초청해 공식 사과했다. 흑인들이 의학과 정부를 불신하는 이유다. 미국에서 흑인들이 당한 역사를 알면 알수록 이들을 향한 손가락질이 수그러든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지금 시점에서 백신접종은 책임이고 의무다. 나와 이웃을 위해, 나라와 인류를 위해 맞아야하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 신념과 두려움이 생명보다 앞서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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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