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화 ‘기생충’의 4관왕 쾌거는 어쩌면 신호탄이었는지 모른다. 한 때 백인들의 잔치라 불렸던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의 공고한 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한국의 배우 윤여정이 해냈다. 여성, 노인, 아시안, 그 모든 차별의 요소들을 짊어지고서.”
제93회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한국의 원로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이에 대한 한국 내 한 언론의 논평이다.
아닌 게 아니라 ‘화이트 오스카’의 철옹성이 무너졌다고 할까. 그게 올해의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보인다.
한국의 여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은 데 이어 중국계인 클로이 자오가 영화 ‘노매드랜드’로 아시아계 여성으로 처음 감독상을 거머쥐었다는 점에서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노매드랜드’는 동명 논픽션을 토대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여파로 떠돌이 생활에 내몰린 현대판 유목민(Nomad)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 극영화로 감독상, 여우주연상에 이어 작품상까지 3관왕을 수상했다.
연기상 후보에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인종의 배우가 포진했다는 것도 그렇다. 윤여정에다가 한국계 이민 2세 스티브 연, 파키스탄계 영국인, 흑인계 등 소수계나 비 미국인 배우가 전체 연기상 후보 20명 중 10명에 달했다.
올해 아카데미는 지난해에 이어 ‘화이트 오스카’의 오명을 지우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2015년과 2016년 남녀 주연상과 조연상 후보 20명은 모두 백인으로 지명됐다. 그러자 벌어진 것이 ‘OscarsSoWhite’(오스카는 너무 하얘) 해시태그 운동이다.
그 비판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시상식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투표권을 가진 회원 명단의 다양성 확보에 힘써왔고 그런 노력이 다양한 부문에서 어느 때보다 빛난 것이 올해의 시상식이란 평가가 따르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부문은 아시아에서 온 두 여성이 올 영화제의 주인공(윤여정과 클로이 자오)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올해 수상결과에 대한 한 국내 영화평론가의 말이다.
‘미나리’ ‘노매드랜드’ 둘 다 미국 사회의 주변부를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인가. 문득 드는 생각은 COVID-19 만연과 확산되어온 미국 내 반 아시아계 혐오정서와 무관하지 않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민으로 세워진 나라가 미국이다. 아시안-아메리칸은 이 미국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의 하나다. 그러나 정체성이 모호한 이민집단 취급을 받아왔고 급기야 팬데믹 와중에서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런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직시, 할리웃이 아시안 아메리칸에 대한 헌정사로 바친 것이 올해의 아카데미시상식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미국 사회가 한국 배우를 환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윤여정씨의 수상 소감 끝 마디다.
어찌 보면 아주 평범해 보이는 한국인의 이민스토리를 다룬 영화가 코리안-아메리칸 2세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다.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해 내려는 한국인 가족의 이민사를 미국인이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감동의 스토리로 영상에 담아냈다.
이 영화에 미국의 비평가들이 하나같이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아카데미 상 6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어떻게 봐야 하나.
이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배우 윤여정씨를 넘어 미국 사회의 코리안-아메리칸에 대한 환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