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사보타주(파괴공작)로 하마터면 항공기 추락사고가 날 뻔했다.’ 독일정보당국의 최근 보고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지난 7월 발트 해 연안국가에서 발송된 소포가 라이프치히의 DHL 물류기지에서 중간 분류작업 도중 화재를 일으켰다.
누가 항공편으로 유럽으로 배송되는 소포에 폭발물을 장착했을까. 러시아가 의심된다는 게 독일 당국의 지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겨냥한 러시아 요원들의 사보타주와 방화, 암살 등 도발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지난 4월 현지 미군기지 등을 공격하려던 독일-러시아 이중 국적자 2명이 당국에 체포됐다. 폴란드에선 우크라이나에 서방 무기가 전달되는 통로인 제슈프 공항 관련정보를 넘기려는 시도가 적발됐다. 배후는 모두 러시아군 총정찰국(GRU)이었다.
하산 다쿠오는 ‘캡타곤의 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캡타곤’은 암페타민류의 중독성이 강한 약물로, 중동 지역을 휩쓸고 있다.
그가 ‘캡타곤의 왕’으로 등극하기까지 뒷배를 보아준 인물은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다. 이런 배경을 업고 헤즈볼라까지 판매책으로 동원, 중동의 마약세계를 지배해오던 그는 최근 레바논에서 체포돼 재판을 받고 있다.
한 국가가 마피아나 다룰 범죄에 직접 뛰어든다. 그 효시는 김씨 왕조의 북한이다. 마약생산과 밀매, 밀수, 달러화 위조 등이 북한의 주종사업으로 외교관들까지 동원돼왔다.
세계화의 물결은 범죄세계의 국제화를 불러왔다. 이와 함께 ‘새로운 국제 무질서(New World Disorder)’가 형성됐다. 이 회색지대 현상의 확산과 함께 국가공권력이 지하범죄에 직접 가담하는 사례는 더 이상 북한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러시아, 시리아, 베네수엘라, 이란, 또 중국이 이 대열에 참가, 범죄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헤즈볼라를 비롯한 각급 테러단체들은 그 행동책으로 한 몫 거들고 있다.
그 접근방법은 북한과 다소 다르다. 정부공작원이 직접 범행에 나서기보다는 마약조직이나 범죄조직과의 조인트 벤처 형식을 취하는 게 보통이다. 유럽에서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고 있는 사보타주가 그렇다. 배후는 GRU이고 범죄조직이 하수인인 식으로.
중국의 주력 종목은 마약이다. 미국 사회를 마비시키고 있는 펜타닐의 화학성 원물질은 거의 다가 ‘메이드 인 차이나’다. 이를 멕시코, 쿠바, 베네수엘라 등지의 마약 카르텔들이 완제품으로 가공해 미국에 유통시키고 있다.
이란도 마약조직의 보스나 현지의 갱들을 매수, 서방공략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암살기도도 이 방식을 취했다. 스톡홀름과 코펜하겐에서는 현지의 10대 갱들을 매수해 벌건 대낮에 이스라엘 대사관에 수류탄을 투척하는 테러공격을 가했다.
공교롭다면 공교롭다. 국제적 마약카르텔에 조직범죄까지 끌어들여 서방세계의 질서를 깨트리려는 이 나라들은 하나같이 CRINKs(중국-러시아-이란-북한) 일원이거나 그 추종 국가들이란 점이 그렇다.
무엇을 말하나. 20세기가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국가 사이의 이데올로기 대결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서방 대 말 그대로 ‘악의 축’과의 대결의 세기이고 그 흐름은 일면 대대적인 ‘범죄전쟁’양상으로도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