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부활절 단상

2021-04-14 (수) 박희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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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부활절이 돌아왔다. 천주교 신자로서 부활절의 고유한 의미는 남다르지만, 오늘은 조금 색다른 감회가 일어난다.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일년 동안, 육십 평생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암울한 삶을 살았고, 백신 덕분에 긴 터널을 빠져 나온 지금, 진정한 부활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편안한 일상에 젖어 살아왔던가? 손자 손녀가 보고프면 만나러 가고, 맛있는 음식이 생각나면 먹으러 가고, 미지의 세계가 보고 싶으면 간단하게 짐을 꾸리고 언제든 떠나왔던 일상이였다. 하지만 지난 일년은 어떠했던가? 마치 나 자신이 코비드 바이러스인 양 모든 것이 올스탑되었다. 직장은 폐쇄되었고 줌이나 카톡으로 소통을 하고, 남이 오는 것도 반갑지 않았고 만나러 가는 것은 더더욱 금지였다. 모든 맛집들도 빗장을 굳게 닫았고 언감생심 여행이라니.

코스트코에 화장지를 사러 세군데나 돌아다녀도 사지 못했고, 물과 비상 식량 사재기에 바빴다. 평소에 잘 먹지도 않던 군것질거리를 비상시에는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사다가 일년 동안 선반 위에 모셔두고 보고만 있다 얼마 전에 다 폐기 처분해버렸다. 화장지는 적어도 2년은 더 쓸 수 있는 재고가 좁은 창고에 누워 있다. 다음주에 돌이 되는, 서울에 사는 손녀가 줌으로 예쁜 짓하는 것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돌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는 마음이 안타깝다.


그런데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나 더더욱 조심을 해야 한다. 지난달에 애틀랜타에서 아시안 여성 여섯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아시안에 대한 증오를 멈추라는 규탄대회가 있었다. 백년 전 T.S. Eliot(엘리엇)이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는데, 물론 의미는 좀 다르지만 그의 혜안이 놀랍다.

이제는 산책을 할 때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따뜻하고 아름다운 기운을 불어넣어 모두를 사랑하고 보듬는 마음의 부활이었으면 좋겠다. 대학 시절, 춥고 긴 겨울을 벗어나 싱그러운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던 부활절 아침에, 미사를 마치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갈 때의 그 상큼했던 바람이 지금도 그립다.

<박희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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