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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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일

2021-04-10 (토)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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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얼굴에 작은 생채기가 나있다. 범인은 아이의 긴 손톱이었다. 엊그제 잘라준 것 같은데 금세 또 자라 기어코 얼굴에 상처를 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손톱깎이로 아직은 무른 아이의 손톱을 조심스레 잘라냈다. 가만히 있지 않으려는 아이에게 말을 건네본다. “예나 손톱이 벌써 이만큼 자랐네. 무럭무럭 자라고 있구나. 이제는 상처 나지 않게 엄마가 더 자주자주 깎아줄게.” 아이는 무엇이 웃기는지 까르륵 웃는다.

잘려 나간 손톱들이 앙증맞아 웃음이 절로 난다. 어느 손톱에는 때까지 끼어 있다. 이 조그마한 아이도 사람이라고 손발톱이 자라고 머리털이 난다. 얼마 전에는 이도 올라와 이앓이를 한참 했다. 언젠가는 손톱이 내 것만큼 딱딱하고 커지는 날이 오겠지. 아이가 너무 빨리 커가는 것 같아 아쉬움마저 드는 하루하루이다.

언제까지 이 아이의 손발톱을 잘라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품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오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본인이 손발톱을 직접 자르겠다는 날이 오겠지. 아이의 키가 나만해지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옆에서 오래오래 자라나는 아이의 모습을 다 내 눈으로 담고 싶다. 부모의 자리는 참 어려운 자리이지만 또 아이의 자라는 모습만 봐도 흐뭇한 것을 보면 이만한 행복이 또 있을까 싶다.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정말 몰랐을 행복이다.


‘자라다’라는 말에는 확장의 의미가 들어있다. 손발톱이 자라고 머리카락이 자라고 키가 자란다는 것은 자란 만큼의 공간이 더 생김을 의미한다. 자라는 것들은 한계가 있다. 손톱, 발톱은 자라다 주기적으로 잘라 주어야 하고 머리카락도 내내 기를 수는 없다. 머리털뿐만 아니라 다른 털도 무한대로 자라지는 않는다. 키도 어느 순간부터는 자라지 않고 정체한다.

한계 없이 자라는 것은 마음뿐이다. 마음이 자란다는 것은 누군가를 더 꽉꽉 채워 넣을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나는 이제 자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나는 아직 자라고 있다. 어제보다 오늘, 아이를 향한 내 마음은 한 뼘 더 자랐다. 아직 자랄 수 있는 것이 남았다는 사실이 억지로 잘라내지 않고도 계속 자랄 자리가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맙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비워내지 않고도 계속 계속 차오를 것만 같다.

아이만 자라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엄마인 나도 이렇게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내일 아이는 또 얼마큼 커있을지 엄마인 나는 또 얼마나 성장할지 기대되는 하루하루이다. 우리 자라면서 성장통도 겪겠지만 힘내서 쑥쑥 커보자고 다짐해본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봄이다. 유아차를 끌고 공원에 꽃을 보러 나왔다. 바깥으로는 꽃과 식물들이 지천으로 자라고 내 마음속에는 아이가 자라고 내 품에는 꽃 같은 아이가 쌔근쌔근 잠들어 있다. 살랑이는 봄바람이 간지러웠는지 아이가 깨서 나를 보더니 방긋 웃는다. “예나 얼굴에도 꽃이 피고 엄마 마음에도 꽃이 피었네.”

그러고 보니 우리 함께 맞이하는 첫 봄이다. 자라나는 모든 것들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계절이다. 이 봄의 기운으로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또 자라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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