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여성의창] 영화 ‘미나리’

2021-02-26 (금) 안세라 (주부)
크게 작게
남편과 오랜만에 영화를 한 편 보게 되었다. 워낙 영화관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연애할 때에도 영화관을 갔었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던 나에게 웬만하면 같이 영화를 보자고 권유도 하지 않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미나리(MINARI)’라는 영화를 꼭 같이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육아퇴근을 하고 잠자는 시간을 포기하며 같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1970년대 말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한 가족이 미국에서의 새 출발을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남부 아칸소의 한 시골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0살 큰딸과 7살 아들을 데리고 부푼 마음으로 도착한 새 집. 땅이 기름지다며 가슴 설레어 하는 남편과는 달리, 마을과는 멀리 동떨어져 있는 데다 전기도 물도 없는 트레일러 집을 보며 한숨짓는 아내.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를 하던 그들은 분명 ‘더 나은 삶’을 희망하며 아칸소에서의 생활을 시작했을 것이다. 남편은 이민자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아칸소의 기름진 땅을 이용해 땅을 개간하고 고추나 깻잎같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채소를 생산해서 판매할 부푼 꿈을 꾼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은 장애물이 많고 부인은 변함없이 병아리 감별사 일을 해야 했기에 한국에서 친정엄마를 부르게 된다. 멸치며 고춧가루며 검은 비닐 봉지에 잔뜩 싸들고 심장이 좋지 않은 손주, 데이비드를 위해 손수 한약까지 지어온 친정엄마. 그리고 ‘어디서든 잘 자란다’는 미나리의 씨앗을 가져온 친정엄마. 그렇게 그들의 또 다른 이민생활이 시작된다.

영화를 보면서 남편도 이민가족으로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의외의 장면에서 눈물을 보였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자는 아내와 말다툼 중에 남편이 외친 한마디.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뭔가 해내는 것을 보여줘야 할 거 아니야!’라고 외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나는 친정엄마가 오기 전 아이들에게 새 옷을 사 입히는 엄마의 마음, 그리고 하나하나 짐을 풀어놓는 친정엄마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정말 특별할 것도 없는 대사 한마디와 한 장면인 것 같은데 남편과 나는 각자의 처지를 대신한 듯 가슴이 떨렸다. 전체적으로 특별할 것 없이 잔잔한 영화였다. 그런데 그게 마치 이민자인 우리의 삶인 것 같았다. 그래서 참 좋았다, 영화 ‘미나리’.

<안세라 (주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