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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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삶은, 세상은 아름답기에)

2021-02-11 (목) 범성 / 스태튼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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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일터로 나서는 맨하탄 FDR 강변로를 달려가노라면 감청색 푸르스름한 먼동이 틔어 온다. 해오름과 함께 미처 피하지 못한 별빛 몇 개가 아직도 반짝이는 하늘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 아름다움으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날 한걸음을 내 딛는다.

밤사이에 나를 눌렀던 진득한 꿈은 삼삼히 잊혀지고 오늘 하루는 어떻게 펼쳐질까 하는 마음에 흥이 솟는다.
지난 짧으면 짧은 두어달 사이에 몇 분의 권사님과 친구를 떠나 보냈다. 게다가 아직도 코로나로 병상에서 온 힘을 다하여 생명과 다툼을 하고 있는 형같은 젊은 장로님과 암과 투쟁하고 있는 몇 분의 성도님도 계시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생명에 아침도 있었고 바삐 세상과 섞이며 치열하게 살았던 낮도 있었고 삶을 정리해야할 저녁도 올 터. 잠시후의 일도 예측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인생에, 지나쳐 온 시간과 세월에 원망과 후회보다 감사한 일들이 마구 떠오른다.


무엇을 먹을까 저녁 밥상의 메뉴를 생각하듯 인생의 저녁도 미리 준비해 놓을 수 있다면 급작히 닥치는 어두움에 두려워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사놓고 차일피일 미루던 책을 들었다. 제목은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얼마나 편협하고 치졸하게 살아왔던가 나의 모습에 값을 쳐줄 수 없을만큼 무너지고 만다.

의리를 앞세우던 친구, 사랑하기 때문에라고 눌러버린 아이들, 의지하고 존경한다 다짐하던 평생의 동반자 아내와, 틈틈히 만나온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말과 행동과 생각에 일일히 대들고 무시하고, 듣고, 보기조차 귀찮아 했던 사소한 것들에 목숨을 걸고 나의 위대함을 과시해 온 것이 처참하게 무너져 가는 듯하다.

한줌 흩어버릴 티끌과 같은 것들에 왜 그리 강팍하게 목숨을 걸었었나 헛웃음이 난다. 감사한 것을 모르고 허깨비처럼 살아왔음이 저녁녘에야 깨닫는가 아쉽기 그지없다.

바람의 냄새가 좋은 것을, 길의 들꽃 하나가 반겨주는 것을, 금방 무친 나물 반찬 몇 개가 혀끝의 맛을 개운케 하는 것을, 추운날 덥석 잡아주는 손으로 온마음이 따뜻해 지는 것을,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기도해 주는 것을… 주섬주섬 고마운 것들을 주워 담아 본다. 모든 일상이 감사하기만 했던 것을 이제는 알듯 싶다. 잊지 않으려 한다.

저녁녘, 집으로 가는 길 Brooklyn Bridge 건너 웅장하게 펼쳐진 싯누런 주황색 노을이 내 가슴 가운데로 물밀듯 쳐들어 온다. 이런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나는 복이 많은 사람. 산다는 것, 살아 간다는 것은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하여 복받치는 고마움을 알게 되는 것이 축복인 것이다.

삶은, 살아 간다는 것은,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않고 사소한 것들을 아름다워하고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라 믿는다. 저 버얼건 노을에 몸과 마음을 얹어 볼까한다.

<범성 / 스태튼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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