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획시리즈- 건국의 아버지들 27

2021-02-02 (화) 08:13:09 이종권 /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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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 건국의 아버지들 27
매주 화요일자 교육섹션에 ‘건국의 아버지들’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뉴저지와 워싱턴 지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이종권 씨가 한글로 번역한 역사서 ‘The Book of the Founding Fathers’에 수록된 미국의 정신과 미국 건국에 가장 의미 있게 공헌한 인물, 독립이라는 꿈을 품고 키웠던 용기 있는 지도자, 세계 최초의 연방 민주주의로 실현해낸 사람들 35인을 조명한다.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조지 메이슨 등 미국에 사는 우리가 필수 교양으로 꼭 알아두면 좋을 인물들이 매주 1명씩 소개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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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핑크니의 약력
△1757년 10월 26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출생 △1775-76년 사우스캐롤라이나 행정협의회 △1779-80, 1787-87년, 1805-06년, 1810-14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입법부 대의원 △1779-81년 민병대 대위 △1784-87년 연합회의 대의원 △1787년 제헌회의 대의원 △1788년 사우스캐롤라이나 비준회의 대의원 △1789-92년, 1796-98년, 1806-08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1801-05년 스페인공사 △1819-21년 합중국 하원의원 △1824년10월 2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서 영면

찰스 핑크니의 ‘핑크니 안(案) (Pickney Plan)’은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 제출되었던 세 개의 안 가운데 하나이다.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완성된 헌법의 많은 (30개 이상의) 조항들이 핑크니의 공헌으로 인정된다. 핑크니는 지극히 활동적인 이력 속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네 차례), 합중국 하원의원, 상원의원 그리고 스페인 공사를 역임했다.
영국에서 교육받은 핑크니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애국 운동을 펼치던 그의 아버지 (찰스 핑크니 대령)를 돕기 위해 귀향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이었다.) 그는 20세도 되기 전부터 자국(사우스캐롤라이나/역주) 행정협의회에서 활동했으며 자국 최초의 헌법을 초안하는 데 조력했다. 전쟁 중에는 민병대에서 복무했으나 포로가 되어 영국군 감옥에서 1년을 보냈다.


1784년 연합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을 때 핑크니는 연합헌장 체제 하의 정부의 취약점을 잘 알 수 있는 직책에 있었다. 연합회의에서는 연합헌장 강화 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하며 (후일) 제헌회의에서 발휘할 역량을 축적할 수 있는 경험을 얻었다. 1786년 회의에서 행해진 연설에서는 연합헌장 수정을 위한 총회가 소집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1787년 5월 핑크니가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안(案)’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에드먼드 랜돌프가 자신의 헌법안(버지니아 안)을 본회의에서 세 시간에 거쳐 설명한 뒤에야 그것을 제출했고, 그리하여 핑크니 안은 조항별로 토의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다른 안들과 함께 세부항목위원회에 회부되었다. 그리고 그 위원회는 추천받은 헌법조항들의 원천을 밝히지 않은 채 총괄적인 보고서만 작성했다.

따라서 헌법에 대한 핑크니의 기여도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후일 핑크니는 자신이 ‘헌법맨 찰리(Constitution Charlie)’라고 불렸다는 과도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핑크니는 또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새 헌법에 많은 기여를 했는데, 그것은 1790년에 채택되었고 합중국 헌법을 모델로 만든 문서였다.
핑크니는 헌법이 비준된 지 30년이 지난 후까지 공직에서 봉사했다. 1790년대에 그는 연방주의당과 결별하고 제퍼슨을 지지했다.

1795년에는 제이 협정을 비난했고 1800년 선거에서는 사촌형 찰스 코트워스 핑크니가 연방주의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음에도 토마스 제퍼슨을 도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제퍼슨 대통령이 핑크니를 스페인 공사로 임명했던 것은 다분히 그에 대한 보상으로 보이지만 핑크니는 스페인을 다루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귀국 후에도 그는 계속 공직에 선출되었으나 그의 경력은 의회에서 마감했고, 그의 마지막 의정활동 가운데 하나는 미주리 타협 반대였다.


●번역자 이종권 씨는
서울 상문고와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동대학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와 캔사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프로 번역가다. 외국어대학교와 경인여대에서 영어 강사를 역임했으며 캔사스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 ‘뉴욕불교’ 편집장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뉴저지에서 출판사인 프론티어 퍼블리케이션스를 비롯 보림식품, 뉴욕산삼컴패니 등을 운영 중이다.

<이종권 /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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