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국가들은 미증유의 정치경제적 충격파와 함께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이후 국가의 역할과 관련한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 논쟁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핵심이슈가 바로 복지다. 바이러스 공격으로 경제가 마비된 가운데 사지로 몰린 취약계층을 건져준 유일한 생명선은 긴급재난지원금과 실업수당 같은 일시적 복지였음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복지처방을 일시적인 조치로 마무리할 것인지 아니면 사태 수습 이후에도 계속 확대해 나가야 할지를 놓고 대립되는 두 견해가 강하게 충돌하고 있다. 국가가 대규모의 복지재정을 지출해 국민들의 삶을 안정시켜야 국가의 미래 성장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그럴 경우 국가재정의 부실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념적 라인을 따라 첨예하게 맞서온 ‘작은 정부’ ‘큰 정부’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이런 논쟁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데는 역시 사실과 숫자, 그리고 경험칙을 근거로 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복지 확대와 관련한 가장 보편적인 비판은 ‘퍼주기’라는 주장이다. OECD 회원국들 가운데 이런 주장이 가장 기승을 부리는 국가는 한국과 미국이다. GDP 대비 한국의 복지예산 비율은 11%로 OECD 평균인 20%의 절반 수준이다. 미국 역시 18.7%로 평균에 못 미친다. 이른바 복지선진국들의 경우에는 이 비율이 30%를 웃돈다.
복지예산 비율이 낮은 국가들일수록 복지에 대한 사회 일각의 부정적 인식이 강고하고 정치적 논쟁 또한 뜨겁다. 그런 논쟁의 양 끝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는 복지보다는 감세를 통해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면 국민들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간다는 ‘낙수이론’과, 복지확대는 오히려 국가재정을 살찌운다는 ‘복지투자론’이다.
낙수이론은 많은 연구들을 통해 허구라는 것이 이미 입증됐다. 연방의회 의뢰를 받아 1945년 이후 부자감세와 경제성장률간의 연관성을 연구한 경제학자 토머스 헝포드는 “감세는 경제성장을 가져오지 못했으며 단지 경제적 불평등만 심화시켰을 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이 주장은 여전히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의 2017년 대규모 부자 감세와 법인세 인하는 이런 잘못된 신념의 산물이었다. 트럼프 감세 후 기업들은 횡재한 막대한 불로소득을 그냥 쌓아두거나 자사주식을 매입하는데 사용했다. 재투자를 한 기업은 거의 없었다.
이런 현상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돈은 말 그대로 잘 돌아야 경제성장과 경기진작 효과를 가져다주는 데 부자들과 대기업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잘 나오지 않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돈이 돌고 돌아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라고 한다. 승수효과가 높을수록 돈이 잘 돈다는 얘기가 된다.
정부가 감세를 통해 부자들의 주머니에 넣어준 돈의 승수효과는 0.23(1달러에 23센트)에 불과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쥐어준 푸드 스탬프의 경우 승수효과가 1.73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1달러가 1.73달러의 경제효과로 되돌아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누구 손에 돈을 쥐어주는 것이 국가경제를 위해 바람직한지 자명해진다.
복지는 곧 투자라는 ‘복지투자론’의 근거는 바로 이것이다. 복지를 확대하면 이런 승수효과를 통해 국가의 수입이 늘어나 재정건전성이 오히려 좋아진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 굳건히 살아남은 국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복지선진국들이었다. 만약 복지가 소모적인 지출이고 국가재정을 파탄 내는 주범이라면 이런 국가들은 진즉에 망했어야 했다. 그러니 복지를 낭비나 퍼주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장기적 투자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필요성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한층 더 시급해졌다.
삶이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놓여 있을 때 혁신적 마인드와 도전정신을 갖기란 어렵다. 그것은 삶이 기본적으로 안정돼 있을 때만 가능하다. 미래 성장의 원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함께 가지 않는 한 어차피 지속적인 국가성장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복지선진국이야말로 진정한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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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