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월 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그가 약속한 것은 “트럼프 이전 정상으로의 복귀”였다. 그러나 1월20일 제46대 미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 바이든이 처한 현실은 지극히 ‘비정상’이다.
계엄령이 내린 듯 중무장한 군인들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치러진 취임식부터가 전례를 찾기 힘든 비정상이었다. 물론 ‘미국의 새로운 날’이 시작된 설렘과 최초의 라틴계 여성 대법관이 주재한 최초의 유색인 여성 부통령의 역사적 취임선서 등 감동적 순간도 적지 않았고, 새 대통령 부부가 가족들과 함께 백악관을 향해 걸어간 짧은 ‘퍼레이드’도 밝고 따뜻해 보였다.
그러나 바이든이 직면한 위기들은 긴박하고 무겁다. 악화되는 팬데믹과 그 여파로 무너지는 경제, 두 달 넘게 승복을 거부했던 전임자와 그의 ‘선거 사기’ 허위주장을 믿고 새 대통령의 당선을 합법적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대규모 트럼프 지지층의 저항…하나하나가 압도적이다.
78세 최고령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업무에 돌입한 이유다. 그는 ‘충격과 경외’ 작전에 돌입한 듯 취임 몇 시간 후 연방시설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무려 15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태풍의 기세를 과시하며 드라마틱한 변화가 밀려올 것을 예고했다.
워싱턴 정치 베테랑 바이든은 새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 시간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취임식 직후 그의 첫 공식 트윗도 “낭비할 시간이 없다”였다. 트럼프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과 상원의 트럼프 탄핵 재판으로 새해 들어 예기치 못한 위기가 더해진 것이다.
바이든의 산적한 난제는 두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의 우선 정책들을 얼마나 빠르게 성사시킬 것인가, 다른 하나는 자신의 기본 공약인 단합을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가.
바이든 어젠다의 상당수는 트럼프 지우기에서 시작된다. 트럼프가 가한 손상 회복이다. 코로나 방치를 지우고 적극 대처로, 반이민을 지우고 친이민으로, 인종차별을 지우고 인종평등으로, 미국 우선의 고립주의 외교를 지우고 다자주의 동맹 복원으로, 기후변화 무시를 지우고 앞장 서 지구 살리기로 되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최우선 과제인 팬데믹 대응으로 코비드-19 백신 1억명 접종 및 100일 마스크 착용 플랜과 함께 1.9조 달러 규모의 추가 부양안이 공개되었고, 트럼프가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 재가입 절차가 시작됐으며, 논란 많고 악명 높았던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금지 행정명령도 철회되었다.
그리고, 1,100만명 기존 서류미비 이민자들을 구제하는 이민개혁안이 발표되었다. 강력한 민주당 천하의 파워구도에서 출범했던 오바마 행정부에서 타이밍을 놓쳐 무산되었던 이민개혁을 주요과제로 약속해 온 바이든이 배타적 반이민시대의 종식을 선언한 것이다.
새 대통령의 공격적 행정명령 발동이 환영만을 받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가 비난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바이든도 행정명령을 남발한다고 비판당할 것이다.
바이든의 목표는 트럼프 지우기를 넘어 코비드-19 공격적 대응과 진보 어젠다 입법화로 향해 있다. 그러나 입법화는, 민주당이 상하원 주도권을 모두 갖게 되었어도, 전혀 쉽지가 않다.
상원 주도권이 너무 허약해서다.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대표는 필리버스터제도가 폐지되지 않는 한 공화당이 단합만 하면 막강한 파워를 계속 갖게 될 것이다. 모든 바이든 어젠다의 입법화는 현재 의석구도에서 최소한 공화 상원의원 10명의 지지를 확보해야 가능해진다.
민주당 내에서 급진파와 중도파를 중재해 당론을 통일시키고, 상원에서 공화당 중도파와 민주당의 거리를 좁혀 접점을 찾아내지 못하면 바이든의 야심찬 어젠다들은 자칫 무산될 수도 있다. 이미 상당수 공화 상원의원들은 추가부양안과 이민개혁안에 대해 ‘엄청난 지출’과 ‘집단적 사면’이라며 강력한 반대를 표하고 있다.
시간과 싸우며 전속력으로 달려야 할 집권 초기 바이든의 발목을 잡을 요소는 또 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상원 탄핵 재판과 2022년 중간선거다.
탄핵으로 상원의 에너지와 시간이 대폭 소진될 것은 불가피하다. 그래서일까, 바이든 팀의 비공식 입장은 “탄핵 재판이 제발 오래 끌지 않도록…”으로 알려졌다.
2022년은 금방 온다. 중간선거가 가까워지면 입법 창구는 점점 좁아진다. 정국이 선거 모드로 바뀌기 전까지가 새 대통령에게 허용된 개혁 성사 기간이다.
단합은 더욱 어려운 과제다. 지금의 양극화 정국에선 공화당과의 초당적 합의만도 벅찬 과제인데, 바이든이 폭력을 불사하는 트럼프 지지층의 ‘화염과 분노’까지 진정시키며 적극 손 내밀지 않으면 단합은 여전히 ‘판타지’에 머물 것이다.
극우 미디어들이 계속 음모론을 퍼나르는 세상, 전임자의 허위주장이 여전히 수천만명에게 가닿는 나라를 이끌어 가야하는 새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정치가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 분노의 화염이 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 후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절반의 미국을 위해서도 열심히 싸울 것을 약속하며 호소했다. “나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나와 나의 진심을 평가해 주십시오. 그래도 의견을 달리 한다면, 괜찮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미국입니다”
더 이상 노골적인 ‘트럼프의 반이민 미국’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좌절 아닌 희망의 새 시대를 체감하면서 새 대통령의 성공적 4년을 응원한다 - 팬데믹이 빠르게, 안전하게 끝나기를…서로에 대한 품위와 배려를 갖춘 ‘정상적’ 이민의 나라로 복귀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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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