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프랑스의 젊은 귀족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9개월 동안 미국을 여행한 후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통찰력 넘치는 저작을 남겼다. 이 책은 미국정치에 대한 가장 뛰어난 저술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책에는 신생국 미국에 대한 한 프랑스 지식인의 뜨거운 애정과 부러움이 넘쳐나고 있다.
토크빌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수 있던 비결을 ‘시민사회의 뛰어난 제휴 기술’에 있다고 썼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의 소지를 다양한 의사소통과 토론 과정을 통해 ‘이익공동체’의 개념으로 제거하는 건강성을 미국을 유럽과 구분시켜주는 우월한 정치적 문화적 인자로 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간의 흐름과 체제의 타성에 필연적으로 뒤따르기 마련인 변질과 퇴행의 위험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미국시민들이 세속적인 이익 추구에 탐닉하게 되면서 진지한 철학적 반성을 게을리 해 마침내 도덕적 공민의식이 무너지게 되면 민주주의는 크게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치 지금의 미국사회를 내다본 족집게 예언처럼 들린다.
2021년의 미국은 토크빌이 그토록 부러워했던 미국의 모습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공동체 의식은 희미해진지 오래고, 천박한 정치에 의해 구성원들 간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사회적 정치적 갈등과 적대감은 과연 회복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깊어졌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사회에는 쓰라린 역사적 상처들과 사회적 모순들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다른 상대와 대화하면서 차이를 극복하려는 타협과 관용의 정신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런 문화의 구체적 소산인 경제적 중산층과 정치적 중도는 갈등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해 주었다. 하지만 양극화로 완충지대가 사라지면서 극심한 마찰과 대립, 그리고 이에 따른 약자들의 고통이 미국사회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팬데믹은 이런 미국사회의 내재적 문제점과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 계기가 됐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국가체계의 붕괴와 무능을 우리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 놓여 있는 것은 물리적 시스템이 아닌 가치관의 붕괴라는 것을 확인했다. 입으로는 국민을 위한다면서도 실제로는 개인과 진영의 편협한 이익만을 앞세운 정치적 리더십은 오히려 물리적 시스템의 작동을 방해했다.
초라해진 미국의 위상은 지난해 나온 163개국 사회진보지수(Social Progress Index)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은 이 조사에서 28위였다. 조사가 시작된 2011년 이후 순위가 하락한 3개 나라 가운데 하나가 미국이었다. 특히 소수민족 차별 부문에서는 최하위권인 100위였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현재 미국이 처해있는 냉엄한 현실이다.
전례 없는 보건위기와 정치적 대립 속에서 조 바이든이 오늘 4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세계 최강국의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오르는 게 개인적으로는 더할 나위없는 영광이겠지만 시대가 부여한 막중한 대임 앞에 서있는 새 대통령의 마음은 크게 무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새 대통령에게는 미국이 현 위기에 현명하게 대처하도록 이끌어가야 하는 당장의 과제뿐 아니라 무너진 미국의 위상을 다시 회복해야 할 보다 근본적인 책무가 있다. 이것의 핵심은 미국의 정신, 즉 토크빌이 그토록 부러워했던 미국의 ‘공동체적 가치’를 다시 회복하는 일이다.
좋으나 싫으나 정치는 그런 책임의 선봉에 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포용의 정치’로 빨리 되돌아가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심화돼오다가 특히 지난 4년 사이 미국사회를 한층 더 혼란과 갈등 속으로 몰아넣은 ‘배제의 정치’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 배척하고 군림하는 정치로는 미국을 결코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없다.
군림과 지배가 아닌 공존이, 또 배제가 아닌 포용의 가치가 ‘위대했던’ 미국의 새로운 방향타가 돼야 한다. 그럴 때 무너진 국가적 자존심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국제사회에서 잃어버린 신뢰와 존경을 되찾는 일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바이든의 4년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항공모함의 진로를 옳은 방향으로 서서히 바꿔주는 역사적 전환의 시간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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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