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안이 13일 연방하원에서 통과되었다. 지난주 연방의사당에 난입한 폭도들의 내란을 선동한 혐의다. ‘역사적’ 탄핵안은 발의 된지 불과 이틀 후 공화의원 10명이 가세해 ‘초당적’으로 가결됐다.
청문회도 증인 심문도 필요치 않았다. 미국의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하는 시위대에게 연방의회 공격을 어떻게 선동했는지, 의사당이 폭도들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고 약탈당했는지, 대선 결과 인증을 위한 회의를 하던 의원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어떻게 몸을 숨겨야 했는지…내란의 생생한 증거가 이미 미 전국과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TV중계되었기 때문이다.
하원의 탄핵은 말하자면 기소다. 트럼트 퇴출은 상원의 탄핵 재판에 의해 결정된다. 하원 절차는 일정에서 결과까지 막힘이 없었지만 상원은 모든 상황이 불확실하다. 갈 길이 멀다.
트럼프 자신이 리처드 닉슨처럼 사임하든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하고 직무를 중지시키는 수정헌법 25조를 발동시킨다면 사안은 훨씬 신속하고 확실하게 처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사임은커녕 폭동 발생 직전의 자기 연설에 대해 12일 “완전히 적절했다”면서 자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같은 날 오후 펜스도 “국익과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하원이 요구한 수정헌법 25조 발동을 거부했다.
남은 조처는 탄핵뿐이다. 하원에서 가결된 탄핵안이 상원에서 재판 형식의 심리를 거쳐 상원의원 67명이상의 찬성으로 유죄 평결을 받아야 트럼프의 대통령직 박탈이 최종 결정된다. 67명 찬성은 민주-공화 의석이 50대50으로 갈린 상원에선 좀처럼 기대하기 힘든 ‘초당적 합의’여서 이틀 전까지만 해도 상원 통과는 ‘가능성 제로’에 가까웠다.
그런데, 12일 오후부터 기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연방의회 공화당 1인자인 미치 매코널 상원대표가 탄핵 쪽으로 기울었다는 보도가 곳곳에서 나온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매코널이 민주당의 탄핵 추진에 흡족해 하면서 탄핵안으로 공화당에서 트럼프 축출이 용이해질 것으로 생각한다는 보도에 이어 매코널 보좌관들이 “12명, 어쩌면 더 많은 공화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추산했다고도 전했으며 악시오스는 상원 표결에서 매코널이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50%가 넘는다고 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양극화 의회에선 드물게 ‘초당적’ 분노를 부른 트럼프의 폭동 선동이 트럼프와 공화당의 결별 계기가 된다면 상원에서의 탄핵안 가결 전망도 밝아질 수 있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공화 상원의원들 대다수가 트럼프의 행동을 혐오한다 해도 탄핵 지지는 아직 극히 드물다. 무엇보다 여전히 트럼프에 충성하는 보수 핵심 표밭과 거리두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2년 후 경선에서의 역풍도, 당장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도 우려해야 한다.
탄핵 반대로 제시되는 가장 큰 이유는 타이밍이다. 며칠 후면 어차피 떠나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무의미하고 소모적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휴회 중인 상원의 탄핵 재판은 트럼프 퇴임 후가 될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무엇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합헌여부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퇴임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여부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고, 전례도 없다. 현직 대통령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주장과 의회의 결정에 따라 퇴임 후에도 탄핵 재판으로 유죄평결을 내릴 수 있다는 주장이 이미 공개적으로 부딪치기 시작했다. 퇴임 후 상원 탄핵 재판이 열릴 경우 트럼프 측이 소송을 제기해 연방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투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퇴임 후 탄핵의 쟁점은 당연히 퇴출이 아닌 트럼프의 향후 공직 취임 금지 여부가 될 것이다. 상원에서 탄핵이 가결될 경우 상원은 다시 과반수 찬성만으로 트럼프가 공직 갖는 것을 금지시킬 수 있다.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재출마는 자연히 불가능해진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에도 트럼프 재출마는 “미국에 대한 폭동과 반란에 연루된 자는 공직을 가질 수 없다”는 수정헌법 14조를 근거로 한 금지안 통과로 막을 수 있기는 하다.
조 바이든 새 행정부 출범과 맞물릴 탄핵정국이 바이든의 ‘통합’ 메시지를 퇴색케 하고 코로나19 추가경기부양안 등 주요 과제 실현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분노한 트럼프 지지층의 시위 확산과 자칫 트럼프를 ‘순교자’로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각기 다른 입장의 손익계산에서 나온 것이지만 대부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런 우려와 지적을 압도하는 것이 탄핵을 해야 하는 이유다. 의회 공격을 선동한 대통령에 대한 제재는 “의회의 옵션이 아닌 의무”이기 때문이다.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다. 내란을 선동한 어떤 대통령도 공직의 특권을 누릴 수 없다는 기록을 남겨야 하는 의무다. 그래야 트럼프에게 그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고, 트럼프가 남은 기간 시도할 위험을 예방할 수 있으며, 제2의 트럼프 출현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탄핵의 최종 결과가 언제 나올 지는 확실치 않다. 기다리는 동안, 지난 4년 끊임없는 혼돈과 논란을 빚으며 우리 모두를 정치의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던 트럼프 시대는 ‘두 번 탄핵 당한 최초의 대통령’ 오명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갈 것이다.
<
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