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녀들이 내려올 듯…사슴 뛰노는 디어 마운틴 ‘Deer Mountain (5,536’)’

2020-12-25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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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들이 내려올 듯…사슴 뛰노는 디어 마운틴 ‘Deer Mountain (5,536’)’

등산로 주위의 산줄기.

오늘은 Big Bear 지역의 Lake Arrowhead 인근에 있는 Deer Mountain으로 산행을 나선다. 우리 캘리포니아에는 ‘Deer’라는 이름의 산이 150여개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주변의 산에서 사슴이 그만큼 빈번히 눈에 띄기 때문일 것이다. 이 Deer Mountain지역도 매년 사슴사냥철이 되면 사냥꾼들이 몰려드는 곳의 하나이다. 이 지역은 10월 둘째 토요일부터 한 달 동안 사냥이 허용된다고 하니 지금이 막 그 기간이 끝난 싯점이겠다.

차제에 사슴에 대한 몇가지 통계를 살펴본다. 미국에는 대략 3,000만 마리의 사슴이 있는 것으로 본다. 캘리포니아는 근간에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는데, 약 50만마리가 있다고 추산한다. 사슴의 천적은 Mountain Lion(산사자)이다. 산사자는 먹이의 94% 내외를 사슴으로 충당하며, 보통은 7~10일에 한 마리의 사슴을 먹어치운다. 캘리포니아는 1990년부터 산사자의 사냥을 금하고있어, 개체수가 크게 늘고있다. 약 5,000마리의 산사자가 일년에 약 200,000마리 이상의 사슴을 잡아 먹으며, 인간 사슴사냥꾼들은 일년에 약 40,000마리를 ‘Harvest’(수확)한다.

자연환경에서의 수명이, 암사슴(Doe)은 18~25년, 숫사슴(Buck)은 14년, 산사자는 8~13년 정도이다. 사슴의 임신기간은 200일 쯤이고, 일년에 2마리 내외의 새끼를 낳는다.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사슴을 유익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는데, 이러한 면에서도 우리네 한국민들의 정서와 닮았다고 하겠다.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설화인 ‘나뭇꾼과 선녀’에 등장하는 사슴에서 특히 친밀감이 많이 느껴지는데, 앞에서 딱딱한 통계자료를 열거했으니, 다 아는 얘기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전해지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사슴이야기를 통하여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춘원 이광수님의 ‘금강산 유기’라는 책의 ‘구룡연’편에 실려있는 내용을 그대로 전재한다. 춘원이 1921년 8월15일에 이 구룡연에 올랐다 하니 거의 100년 전에 채록한 설화이겠다.

“옛날 아직 이곳(상팔담)에 사람 다니는 길이 나기 전에는 하느님의 딸 되는 팔선녀가 가끔 목욕하러들 내려왔다 합니다. 맏딸 아기는 제1담에, 둘째는 제2담에, 이 모양으로 여덟 담을 하나씩 차지하고 목욕을 한 뒤에, 여기 올라와 이 대야에 세수하고 화장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여덟 선녀들이 더 이상 목욕하러 내려오지 않게 된 데에는 그럴 듯한 까닭이 있습니다. 구룡연 저 밑에, 그것도 옛날에 한 총각이 있었는데 잣과 버섯과 풀뿌리를 먹고 살더랍니다. 하루는 겨울 준비로 나무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슴 하나가 사냥꾼에게 쫓겨와 숨겨주기를 청하였습니다. 그 총각은 불쌍해서 나뭇단 속에 숨겨주었습니다. 사슴은 그 은혜를 감격히 여겨 총각에게 소원을 물었는데, 그 총각은 아름다운 아내가 소원이라 하였습니다. 사슴은 그 총각을 끌고 팔담에 올라와, 한창 지껄이며 목욕하는 여덟 선녀를 보이면서 이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선녀의 옷을 감추라 하였습니다. 총각은 사슴의 말대로 둘째 선녀의 옷을 감추고 바위 뒤에 숨어서 기다리고 앉았더니, 이윽고 하늘에서 무지개 사다리가 내려와 일곱 선녀는 다 제 옷을 찾아 입고 올라가고, 둘째 선녀는 옷이 없어 엉엉 울었습니다. 이 때에 총각이 옷을 가지고 나서며 ‘나하고 같이 살자’ 하여 그날부터 부부가 되어 아들도 낳고 딸도 낳았으나, 그래도 선녀의 속 허리띠 하나는 사슴의 말대로 감추고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아들이 3형제, 딸이 3형제가 된 뒤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그 허리띠를 주었는데, 선녀는 그날 총각이 잣 따러 간 사이에 아이들을 다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총각은 울면서 팔담으로 헤매고 다니니 그때 사슴이 나와서 말하기를,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는 여덟 선녀가 목욕하러 내려오지 아니하고 칠월 백중날 하늘에서 긴 두레박을 내려 보내어 구룡연의 물을 떠올려다가 목욕을 하게 되었으니, 그날 구룡연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두레박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총각은 그 말대로 두레박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서 하느님의 사위가 되어 잘 산다는데, 지금도 백중날이면 은두레박 줄에 금두레박이 구룡연에 내려와 물을 떠 올려 그 두레박에서 쏟아지는 물에 백중비가 온다 합니다. - ‘팔선녀 안 오시니 팔담이 비었거늘, 수면에 이는 바람 선향은 어인 일고, 그날에 씻은 향한이 응불류를 함이러라’.”

현시대의 법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금강산의 이 총각은 ‘악랄하기 그지없는 인신억류, 납치, 감금, 상습 성폭행범’일 수 있겠고, 사슴은 ‘유괴납치교사 방조범’ 쯤이 될 듯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으로 느껴지는 내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얄지 모르겠다.

유명한 자연주의자이고 저술가이며 Sierra Club의 창립자였던 John Muir( 1838~1914 )는 다음과 같이 사슴을 묘사했다. - “일생을 통하여, 서 있거나, 앉거나, 걷거나, 풀을 뜯거나, 달리거나, 그 언제라도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을 만큼 우아하며, 모든 자연풍경에 아름다움과 생기를 부여하는 존재가 바로 사슴이다.”

이 Deer Mountain을 오르는 일반적인 루트는 3가지를 들 수 있는데, 오늘은 편도 3.7마일의 루트중에서 2.3마일에 걸쳐 대단히 아름다운 PCT를 경유하는 코스를 안내한다. 왕복 7.4마일, 순등반고도 2000’ 내외이다. 보통은 6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선녀들이 내려올 듯…사슴 뛰노는 디어 마운틴 ‘Deer Mountain (5,536’)’

건너야 하는 Deep Creek 바닥.


▷ 가는 길

LA 한인타운에서는 먼저 I-10 East에 이어 Freeway 60 East를 탄다. 다시 605 North로 올라가서 210 East를 타다가 한인타운에서 대략 63.5마일이 되는 지점의 76번 출구( Waterman Ave )로 나와 18번 Highway North를 탄다. 18번 도로를 18.2마일을 달리면 왼쪽으로 CA-173 도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3.3마일을 간다. 우측에 Hook Creek Rd가 나온다. 이를 따라 3.2마일을 가면 길이 나뉘는데, 좌측의 Squint Ranch Rd를 택해 0.1마일을 간다. 좌우로 길이 갈린다. 우측으로 0.5마일을 가면 길이 끝나고 주차장이다. Splinters Cabin Day Use Area로 오늘 우리 등산의 출발점이다. 피크닉 테이블과 화장실이 있다. 주차허가증을 걸어 두어야 하며, 도로의 마지막 1마일쯤이 비포장이라, 4x4 차량이 아니더라도 High Clearance차량은 필요하다. LA 한인타운에서 대략 3시간쯤 걸린다.
선녀들이 내려올 듯…사슴 뛰노는 디어 마운틴 ‘Deer Mountain (5,536’)’

정상에서 굽어보는 서쪽 전망.


▷ 등산코스

이곳 Splinters Cabin은 1922년에 Le Roy Raymond와 그 형제들이 건립했는데, 그들이 집을 짓는 모양을 보던 Le Roy의 아내가 “Full of splinters( 온갖 잡동사니 토막들 )”라며 내내 못 마땅해 한데서 이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등산로 시작점에는 Gazebo 스타일의 건물이 있고 그 안에 피크닉 테이블이 있다.


안내판에 나온 방향을 따라 0.1마일을 북쪽으로 가면, 우측의 Deep Creek의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Big Bear의 Delamar Mountain을 거쳐서 이곳으로 북상하는 PCT가 이 다리를 건너온다. 우리는 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 직진하는 PCT를 따라 북쪽으로 나아간다. 오른쪽의 계곡이 아주 깊다. 그래서 Deep Creek인가 본데, 5~6마일 남동쪽에 있는 Snow Valley쪽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며 Lake Arrowhead에서 멀지 않은 이 지역을 지나 PCT와 나란히 14마일쯤을 더 간 후에, 서쪽으로 또 남쪽으로 흘러서, 여분의 물이 종국엔 Silverwood Lake로 유입되는 흐름이다.

등산로는 PCT의 등에 엎혀 Deep Creek의 서쪽 기슭을 따라 나간다. 계곡과 산줄기의 경관이 수려하다. 등산시작점에서 약 2.4마일되는 지점에 이르면 우측의 Deep Creek으로 내려가는 Use Trail이 있다. Pinyon Pine 한 그루가 서있는 곳이고, 계곡 너머 동쪽으로 피라밋을 닮은 삼각 봉우리가 가까이에 있는 곳이다. 만약 왼쪽의 산 기슭에서 PCT로 유입되는 Use Trail을 만난다면, 이는 Creek으로 내려가는 지점을 지나온 것이다. 100m정도를 뒤돌아가야 한다.

이 지점은 계곡이 그리 깊지 않아 Creek으로 내려가는 길이 그다지 가파르지 않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널려있는 하상에 내려서면 동쪽으로 개울을 건넌다. 우기가 아니라면 물을 건너는 일이 어렵지 않으나, 초목이 우거져 있으니 서두르지 않고 조심스레 개울을 지나야 겠다.

개울을 건너면 대개는 두서너개의 돌을 올려 쌓아 길을 알려주는 Ducks들을 볼 수 있다. 개울에 내려오기 전에 보았던 피리밋을 닮은 봉우리를 오르는 것이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인 셈이다. Use Trail을 찾아서 오르는데, 처음부터 가파른 경사면이다. 다행이라면 급한 경사면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계곡의 바닥( 4255’ )에서 Deer Mountain 정상( 5536’ )까지 의 거리가 1.3마일에 순등반고도는 약 1300’이니, 전체적으로 꽤 가파른 구간이라고 하겠다.

바위들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는 첫번째 봉우리에 올라서면 시야가 확 트여 시원한 느낌이다. 뒤를 돌아보면 Deep Creek의 푸른 담소와 산줄기들이 눈 앞에 아름답게 펼쳐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능선의 고점을 따라 산을 오른다. 키가 큰 식물들은 거의 없다. 허리 아래의 높이로 자라있는 Wild Buckwheat, Yerba Santa, Chaparral Yucca 등이 주로 보인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다른 식물들이 나타난다. Bush Poppy, Chamise, Manzanita, Mexican Flannel Bush, Buckthorn 등 약간 키가 큰 식물들이다. 3.4마일 지점에 이르면 등산로의 왼쪽으로 지구상의 모든 소나무 중에서 가장 큰 솔방울을 맺는 것으로 유명한 Coulter Pine 한 그루가 달랑 외롭게 서있다( 5220’ ). 이제 정상은 불과 0.3마일 앞이다. 이 부근에는 온통 Mexican Flannel Bush 일색이다. 봄에는 한껏 아름다운 노오란 꽃동산을 이룰 것이다.

정상( 5536’ )은 산줄기의 끝에서 왼쪽으로 약간 굽어져 50m 쯤 떨어진 곳이다. 더 서쪽에 있는 산줄기로 하산하려는 잘못이 없도록 잘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제법 큰 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또 띄엄띄엄 떨어져 있기도 하다. 가장 큰 바위위에 정상등록부가 있다. 전망이 광활하다. Shay, Little Shay, Ingham 등이 동쪽으로 가깝고, 그 뒤로 Delamar, Butler, Crafts 등이 있다. 서쪽으로는 The Pinnacles가 있고, Mt. Baldy와 그 주변의 고봉들도 눈에 들어온다.

310-259-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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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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