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20 본보 문예공모전] 시 부문 입상작 ‘겨울 호수’

2020-12-18 (금)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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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이 내려오다 낮은 나무가지에 걸려 있다

호수가 어느 불빛 하나 빙판위에 반짝 앉았다 밤하늘로 스며든다.

달빛 한줄기 구름사이로 내려와 눈언덕 속으로 스며든다


흰눈은 젖가슴을 땅에 대어놓고 대지로 스며든다

밤 여행을 막 시작한 기러기 높은 하늘로 치솟아 어둠속으로 스며들고

처량한 울음 소리 축축한 내 옷깃속으로 스며들어 눈물로 떨어진다.

언제가 너도 그렇게 내게 스며들었었지

우린 서로 스며들었었지

너의 몸도 나의 몸도 아닌 제삼의 몸이 되었었지

그리고 춤을 추었었지, 제삼의 몸으로


운명의 춤을

바람이 데려갔나봐

옛 전설 바다의 물고기들과 개구리들 새들과 들꽃과 짐승들

그리고 푸른 하늘의 영롱한 별빛들, 모두 어디로

싸늘한 한줄기 바람 텅빈 가슴이 휑하다.

스며들고프다, 옛바다의 전설속으로

그 하늘, 별들의 이야기를 주절이 주절이 풀어내며

유리알같은 이 밤 속으로 나도 스며들고프다.

◆당선 소감: 김은영

내게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때는 과학책을 읽을 때이다. 과학이 설명하는 생명과 우주의 신비를 알게될 때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인들에 의하여 노래되었고 철학자들에 의하여 설명되었음이 참으로 경이롭다.

거시적인 세계에서는 나와 남이, 산과 바다가 확실히 구별되지만 미시세계로 들어갈수록 그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나는 수억년 전에 우주에서 탄생한 별의 별먼지로 구성되어 있고 나 또한 어느날 우주에 떠 있는 별의 구성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지구의 옛바다에서 생명이 탄생했고 그 생명들의 소멸과 생성, 순환을 거쳐서 지금의 내가 되어 있다는 생각. 지구의 수억년의 세월속에서 우리가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에서 만났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전율케한다.

미시세계로 들어갈수록 지구상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 즉 우리는 서로 성분을 나누고, 유전자를 나누면서 서로 공생하는 하나의 통합체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이로움으로 나는 시를 읽게 되고 시인들을 존경하게 되고, 또 그런 시인이 되고 싶게 한다. 졸작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수고하신 심사위원들과 기회를 만들어 준 한국일보에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이제 용기를 얻었으니 내안에 살고있는 커다란 명제, 생명과 우주의 아름다운 신비가 시의 언어로 재창조되는 작업에 다시 도전하고 정진해 보고자 한다.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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