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 녹슬지 않은 시심
나태주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또다시 미국으로부터 배달되어 온 시작품을 읽었습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읽은 작품들이라 더욱 그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예년과 비슷한 양의 작품이 응모되어 있어서 적이 놀라는 마음이었고 그만큼 인간의 영혼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감사한 심정이었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마음이지만 시를 쓰는 분들은 왜 시의 문장이 다른 문장과 달라야 하는가 하는 것을 깊이 각성하면서 시를 써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우선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시를 읽고 배우면서 그 시를 따라가면서 시를 씁니다. 그것이 첫 단계입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길을 찾아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단계를 만나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물과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달라야 하고 표현하는 문장이 달라야 합니다. 문장이 다르다는 것은 어조가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끝내 자기만의 특성, 아우라를 이루어야 합니다.
올해도 여전히 한혜영 시인과 심사를 했습니다. 각자 작품을 뽑고 전화로 의견을 나누어 선후를 가리는 방법으로 했습니다. 예년과 같이 합의는 빨랐고 명쾌했습니다. 규정에 따라 다섯 분의 수상작품을 골랐습니다.
* 당선작: 김은영 님의 「겨울 호수」는 함께 보내온 세 편의 작품 수준이 균질했고 깔끔한 문장과 육화된 음성이 좋았습니다.
* 가작: 강성예 님의 「멸치」는 산문시인데 왜 문장이 산문이면서 그것이 시가 될 수 있는가를 충분히 아는 작가로 보였습니다.
* 가작: 이창범 님의 「연어의 강」은 시의 문장이 건강하면서도 젊은 숨소리가 스며 있어서 호감이 갔습니다.
* 장려상: 조 성 님의 「걸음마」는 시의 표현이 간결하면서도 분명했고 시적 대상을 들여다보는 치밀성이 좋았습니다.
* 장려상: 박상근 님의 「뭉게구름」은 낭만적인 주제를 정겨운 말씨로 형상화하는 솜씨가 좋았습니다.
늘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작품의 선발과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입니다.
응모하신 분들이나 뽑힌 분들이나 지나치게 여기에 매달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인생을 보다 아름답게 살면서 끊임없이 지지치 않고 자기의 시를 쓰는 마음의 능력이며 열정이 중요합니다.
뽑힌 분들에겐 대성을 기원하고 뽑히지 못한 분들에겐 송구한 마음을 전합니다.
감상 벗고 사유 더 깊어져야
한혜영 (시인)
시절이 어수선해서 그런지 한눈에 사로잡히는 원고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다섯 분의 입상자를 선정할 수 있었고, 김은영 님의 ‘겨울 호수’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외로움과 쓸쓸함을 ‘빙판 위에 반짝 내려앉았다 밤하늘로 스며드는 호숫가 어느 불빛’이라든가 ‘높은 하늘로 치솟아 어둠속으로 스며드는, 밤 여행을 막 시작한 기러기라든지. 사뭇 쓸쓸한 듯하지만, ’혼밥‘ 혼술’이라는 신종언어가 유행인 이 시대에 과거의 따스함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좋았다. 다만 감상적인 느낌이 살짝 어른거리는데, 이 점을 빨리 극복해야겠다.
가작으로는 강성예 님의 ‘멸치’와 이창범 님의 ‘연어의 강’이 선정되었다.
‘멸치’는 바다를 떠난 한 생명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인간의 삶과 접목시켜보려는 시도를 했고, ‘연어의 강(江)’은 연어라는 생명을 품고 있는 강을 산부(産婦)로 보아낸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두 분 모두 운문이 갖춰야 할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멸치’는 많은 생각을 쏟아냈으나 간결하게 정리를 못한 느낌이고, ‘연어의 강(江)’은 반대로 사유가 조금 더 깊었더라면 싶다. 주제를 충분하게 끌어올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
장려상에는 조성 님의 ‘걸음마’와 박상근 님의 ‘뭉게구름’이 차지했다. ‘걸음마’는 칠십 중반의 아들이 백 살 노모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시키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백 년 동안 일어났던 크나큰 역사적 사건들을 한 걸음 한 걸음에 비유한 것도 인상적이고. 과묵한 점이 행간의 의미를 제공하긴 하지만, 반대로 그 점이 손해를 보기도 했다. ‘뭉게구름’은 조금 더 시적 요소를 갖췄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코로나19 속에서 어렵사리 응모를 했을 텐데 칭찬 일색의 심사평을 쓰지 못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이것이 얼마나 애정이 있는 지적인지를 알아주시리라 믿는다. 힘든 시기에 문학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조금이나마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선정되신 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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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한국시인협회장)/한혜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