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이든의 ‘힐링 시대’

2020-11-1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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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조 바이든이 제시한 첫 약속은 ‘미국의 영혼 회복’이었다. 민주당 경선과 본선을 치른 지난 18개월의 길고 험한 여정에서 그가 줄곧 강조한 것은 특정 이념이나 정책을 근거로 한 새로운 비전이나 과감한 개혁이 아니었다. 트럼프 시대에서 악화된 양극화 분열을 통합으로 바꾸는 치유, 그것이 출발부터 바이든 캠페인의 핵심이었다.

지난 7일 밤 2020년 대선 승리 확정 후 첫 스피치에서 그는 미국의 영혼을 되찾기 위한 ‘힐링과 통합’을 다시 약속했다. 팬데믹의 와중에서 치유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대통령 당선인은 트럼프에게 투표한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밀며 말했다 :

“난 오늘밤 여러분의 실망을 이해합니다. 나 자신도 몇 번 선거에서 패배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서로에게 기회를 줍시다…난 자랑스러운 민주당으로 출마했으나 이제는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나를 지지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지금 여기에서, 상대를 악마시하는 음울한 시대의 끝내기를 시작합시다”


사실 바이든의 이런 다짐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여러 대통령들이 승리 연설에서 유사한 내용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날 밤 그의 스피치가 감동적이었다고 말한다. 분열과 혼돈의 트럼프 4년 동안 실종되었던 ‘정상(normal)’의 재발견이었기 때문이다.

‘바이든 승리’ 첫 예측이 나온 이날 오전 미국의 대도시들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은 트럼프에게서 풀려난 기쁨을 만끽하며 환호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몽니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축배를 들 만한 충분한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승자에게 축하를 보내는 패자의 승복 스피치로 마무리 해온 미 대선의 전통은 다른 수많은 전통처럼 트럼프에 의해 깨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민으로서의 단합이 정당에 따른 분리보다 훨씬 위대하다”며 승리한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게 지지를 서약했던 1952년 애들레이 스티븐슨의 ‘모범적’ 승복 스피치까지는 언감생심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4년 전, 자신보다 거의 300만 표나 더 받고도 승복했던 힐러리 클린턴이 좌절한 지지자들을 향해 “결과를 받아 들여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우리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우린 그에게 마음을 열고 리드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호소했던 것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미 선거제도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을 계속하는 소송과 선동적 트윗에서 바이든 당선인의 인수작업 방해에 이르기까지 날로 더해가는 트럼프의 불복투쟁에 반대하는 공화의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공화당이 여전히 트럼프 당인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한다.

최근 한 여론조사는 공화당 유권자들에게 공화당에 투표하는 이유가 트럼프 지지인가, 공화당 지지인가를 물었다. 56%가 트럼프 지지라고 답했다. 트럼프에 대한 공화 표밭의 열기는 이번 대선에서도 증명되었다. 7,200만명이 트럼프를 찍었다. 바이든보다는 500만 표가 적지만 미 대선사상 최고 득표 2위다. 다른 사람도 아닌 트럼프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기엔 엄청난 득표이긴 하다.

불복투쟁이 선거 결과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분노와 불안을 악화시킬 위험은 있다. 미국민의 과반수가 거부한 트럼프의 거짓과 무능, 인종주의와 부패, 미국의 기본 가치관과 민주제도에 대한 훼손…이 ‘모든 부적절함을 능가하는 그의 장점’을 인정하고 그를 선택한 7,200만명과 이들을 열광시킨 트럼피즘은 트럼프의 퇴장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양극화 분열 속에서 바이든의 통합을 위한 치유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바이든 대통령’이 직면할 워싱턴의 정치 환경도 힐링에 도움이 될 만한 친화적 구도는 아니다. 1월 조지아 주 결선 투표로 확정될 상원의 주도권은 공화당이 다시 가져갈 가능성이 높고 하원에서도 민주당 의석이 확 줄어들었다. 선거 중엔 입 다물고 중도적 바이든에 무조건 지지를 보냈던 민주당 내 진보파의 급진적 개혁 압박도 강해질 것이다.

오바마 시절 무조건 방해 작전을 밀어붙였던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대표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일각에선 오랜 상원 동료였던 바이든과 매코널이 새로운 국정 파트너로 초당적 협상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희망어린 전망도 나온다. 공화당 상원이 급진 개혁의 시도 자체를 막아 바이든의 중도 노선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어느 쪽이든 자신 앞에 펼쳐질 복합적 정치 상황을 오랜 경력의 바이든이 노련한 정치 기술로 잘 활용할 수 있다면 단합과 치유를 진전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안정된 리더십이다. 국민을 향한 자신의 기본 약속인 통합을 공화당의 방해에도, 민주당의 압박에도 휘둘리지 않고 꿋꿋이 밀고나가는 의지는 정치적 야심을 비울 수 있는 노 대통령이어서 가능할 수도 있다.

바이든의 최우선 과제는 팬데믹 통제다. 트럼프와는 반대로 팬데믹의 정치화부터 중단시켜야 한다. 7,200만 트럼프 지지자들을 포함한 전 국민들에게 팬데믹 저지 위한 마스크 쓰기가 ‘초당적’ 의무임을 확신시킬 수 있다면 ‘바이든의 힐링 시대’는 성공적으로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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