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 입학 후 서울, 뉴욕 그리고 워싱턴DC로 삶의 터전을 옮겨가며 도시에서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많은 밀레니얼 중 한 명이다. 세대마다 자라온 환경과 시대적 상황에 맞춰 각기 다른 특징들이 있는데 도시에 거주하는 밀레니얼들의 경우 학자금 대출과 비싼 집값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경향은 미국과 한국에서 공통적으로 접하는 뉴스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가 학자금 대출에 따른 빚 부담이 한국의 밀레니얼 보다 더 크지만, 서울 혹은 수도권에서 살아가는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끝없이 계속 오르는 집 값이 결혼을 포기하게 만드는 더 큰 이유가 된다는 공통된 인식이 있다.
코로나 시기 이전 업무로 미국과 한국을 자주 왕래하던 내가 만났던 또래들로부터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내 경험을 비추어보면 이런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뚜렷한 주체성과 개성을 바탕으로 자라난 밀레니얼 세대가 각기 다른 환경에서 20-30년간 살아온 다른 사람과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내겠다고 법적으로 서약하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져 밀레니얼 세대가 전 세대와 비교했을 때 결혼이 늦어지거나 비혼주의자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지인들이 매우 놀라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사람들이 나를 비혼주의자로 생각했을 만큼 나도 결혼에 정말 관심이 없던 것이 사실이다. 결혼 이전 나의 삶에서 크게 아쉽거나 부족한 점을 못 느끼고 바쁜 업무로 그리고 잦은 이동으로 외롭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어려웠다.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에게 올해 초 내 결혼소식을 들은 친구가 “빨라야 40에나 결혼할 줄 알았다” 라는 반응을 보인 것을 보면 결혼은 나에게 인생의 필수 관문이 아닌, 선택으로 비추어졌다.
하지만 이랬던 내가 현재 아내를 만나 생각이 180도 바뀌어 결혼해서 디씨에서 막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약 2주전 우리 부부의 결혼식 주례를 해주신 숭실대 김회권 목사님은 결혼은 약 60년의 인생을 “1부1처제의 속박”, “방탕하게 살 자유의 종식”, 그리고 “일편단심으로 살아갈 자발적 감금” 으로 표현하시면서 결혼이라는 매우 진지하면서 엄중한 특성을 매우 유쾌한 주례사로 전달해주셨다.
목사님의 주례사에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부부 사랑은 ‘초자연적인 은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데, 이제 막 2주 남짓 된 나의 부부 생활은 어쩌면 이러한 기적과 같은 일에 도전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결혼 전 다른 커플들로부터 익히 들었던 소변 시 변기 뚜껑을 올리고 보느냐 혹은 변기에 앉아서 보는가 하는 문제부터, 운동화를 모으는 소소한 취미를 가진 내가 소유한 신발 박스들을 집 한편에 쌓아서 보관할지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창고에 넣어서 보관할지, 가구 배치 및 공간활용에 대한 의견 등 논의를 통해 하루하루 나라는 사람이 어떠한 취향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나 자신을 더 발견하고 모든 것이 아내와 함께 조율의 연속이다.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고, 그리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 주는 것이 잘 되지 않아 헤어지는 커플들도 많은데, 나는 목사님의 주례 말씀처럼 초자연적인 은혜를 만끽하면서 하루하루 아직 몰랐던 내 아내의 모습과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해 가고자 한다.
비교적 코로나 안전지대로 여겨지던 한국도 우리 결혼식 전부터 전국으로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래도 결혼한 것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이 1도 들지 않을 만큼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에 비교도 되지 않는 것 같다.
믿음의 유무를 떠나 결혼에 대한 망설임이 있는 또래 밀레니얼 세대에게 나도 비교적 뒤늦게 경험하기 시작한 이 초자연적인 은혜(부부생활)를 누려보라고 권하는 것이 너무 진부하게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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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