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사임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전설적인 저널리스트 밥 우드워드의 현직 대통령에 관한 새 책 출간으로 행정부가 한바탕 요동치는 것은 워싱턴 전통 중의 하나라고 한다. 빌 클린턴에 관해 2권, 조지 W. 부시에 관해 4권, 버락 오바마에 관해 2권의 심층 취재 서적을 발간했던 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관해 쓴 두 번째 책 ‘격노(Rage)’가 15일 정식 출간되었다.
일부 내용이 공개된 지난주부터 이 책이 상당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익명의 소스’가 아닌 트럼프 자신과의 18번에 걸친 대화를 토대로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녹음 테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짜 뉴스’라는 백악관의 단골 방어가 이번엔 안 통한다는 뜻이다.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트럼프의 코로나바이러스 ‘거짓말’이다.
대통령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첫 브리핑을 받은 것은 1월28일이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이 신종 바이러스가 “대통령 임기 중 직면할 최대 국가안보 위협이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 경고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했을 트럼프는 2월7일 우드워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공기로 전염된다”면서 “독감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식석상에선 말을 바꿨다. “독감과 유사하다”면서 “곧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세계에서 확진케이스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던 4월에 들어선 후에도 우드워드에겐 “믿기 힘들 정도로 너무 쉽게 전염된다”고 강조했고, 공식적으로는 “곧 사라질 것”이라고 거짓말을 계속했다. 기본 방역지침인 거리두기와 마스크도 솔선해서 무시했다.
첫 환자 발생 무렵에 이미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떻게 전염되며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았던 대통령은 왜 국민들에게 사실대로 알리지 않고 이처럼 오도했을까.
바이러스를 “가볍게 취급하기 원한다”면서 3월19일 인터뷰에서 코로나의 위험성에 대한 고의적 은폐·축소를 시인한 그는 그 이유를 “패닉상태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집단 패닉을 선동하는 공포전략은 트럼프 정치의 핵심이다. 그는 2016년 대선 캠페인 당시 ‘테러범 무슬림’ ‘강간·마약범 멕시칸’으로 ‘반 이민’ 집단 공포를 내세우며 정치에 입문했다. 당선 후에도 계속 취임연설 땐 ‘미국의 대학살’로, 2018년 중간선거 땐 중남미 이민 캐러밴의 ‘미국 침공’으로, 그리고 최근엔 “폭력적 안티파들이 교외지역을 초토화시킬 바이든의 미국‘으로 공포 조성에 앞장서온 그의 말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그보다는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자부하는 주식시장에 미칠 충격을 우려해서였다는 분석이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린다.
우드워드가 인용한 전·현직 고위 관리들의 대통령 자질에 대한 혹평도 거침이 없다. 트럼프에겐 ‘도덕적 잣대가 없다“고 말한 짐 매티스 전 국방장관은 그를 “위험하고 부적격”이라고 평했고 댄 코츠 전 국정원장도 ”그는 진실과 거짓말의 차이를 모른다“고 말했다. 현 국립 앨러지·전염병 연구소장으로 대통령의 무책임한 코로나 대응에 자주 곤혹스러워하는 앤서니 파우치 박사는 트럼프의 집중력이 형편없다면서 “그의 유일한 목적은 재선”이라고 지적했다.
선거가 7주도 채 안남은 시점에서 폭로된 트럼프의 ‘코로나 거짓말’이 그의 재선에 ‘폭탄’이 될지는 미지수다. 닉슨을 사임으로 몰고 간 것도, 클린턴을 탄핵법정에 세운 것도 ‘대통령의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우드워드의 책이 “여론을 흔들지 못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프린스턴 대 정치역사학 교수 줄리언 젤리저는 진단한다.
2020년의 정치상황이 70년대나 90년대와는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양극화 현상으로 이 같은 폭로에 마음을 바꿀 부동층 유권자가 적어졌고,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으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쇼킹한 폭로’에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것이 진짜 용납 못할 ‘중대한 사안’인지를 구별하기도 힘들어졌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미 국민 전체의 일상을 완전히 뒤흔들면서 아직도 계속 중인 최악의 위기다. 당연히 이번 대선의 최대 이슈다. 20만에 가까운 사망자 발생이 트럼프의 책임이라는 말이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어느 대통령에게도 엄청난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초기에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고 위험성을 경고한 후 충분한 테스팅과 강력한 감염추적 시스템 등으로 적극 대처하는 ‘상식적인 리더십’만이라도 발휘했다면, 그래서 솔선수범하는 대통령을 따라 전 국민이 적극적으로 방역에 단합했다면 희생은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단언한다.
대통령이 “일평생 한번 올 정도의 보건 비상사태란 보고를 들었을 때 ‘리더십 시계’를 리셋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한 우드워드가 ‘진실 공유’ 대신 충동적 직감을 통치 원칙으로 삼은 트럼프에 대해 내린 평가는 냉엄하다 : “그는 (대통령) 직책에 맞지 않는 사람이다”
그 평가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트럼프는 13일에도 코로나 방역에 무책임한 태도를 한껏 과시했다. 50명 이상의 모임을 금지시킨 네바다 주에서 거리두기도, 마스크도 무시한 수천명이 들어찬 실내 유세를 강행한 것이다. 11월3일이 그에게 어떤 평가를 내릴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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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