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로 실을 자아내듯이 끊임없이 논란거리를 꺼내놓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작심한 듯 던진 화두는 ‘우편투표’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민주당의 우편투표 대폭 확대 추진이 본격화되면서 지난 몇 달 계속 공격해 왔지만 별 관심을 끌지 못해서였을까, 이번엔 ‘부정선거 위험’을 구실삼아 아예 “선거 연기???” 트윗으로까지 치달았다. 민주·공화 양당의 거센 반대로 몇 시간 만에 물러서긴 했으나 우편투표를 이리저리 겨냥하는 그의 발언은 줄곧 뉴스의 조명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3일엔 네바다의 민주당 주의회가 우편투표 전면 확대안을 통과시키자 소송을 위협했던 그가, 4일엔 공화당 주정부가 이끄는 플로리다의 선거시스템은 안전하다면서 우편투표를 권하더니 5일엔 네바다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3일 방영된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선 “누군가는 개를 위해 투표용지를 받고, 누군가는 또 다른 것으로 투표용지를 받는다. 그렇게 수백만장의 투표용지를 받게 될 것”이라며 우편투표의 사기 위험성을 과장하기도 했다.
우편투표는 트럼프의 지지층인 노인 유권자들에게 상당히 편리하고 안전한 제도이기도 한데 트럼프는 왜 그렇게 싫은 것일까. 다양한 이유가 제기되지만 무엇보다 민주당에 유리해서다.
우편투표 확대 이유는 “전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 정답이긴 하다. 그러나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것은 여러 숫자가 말해준다. 전체 우편투표로 바꾼 후 콜로라도의 투표율은 9%가 상승했다. 원래 충실한 유권자인 노인층은 큰 변화가 없었으나 투표 잘 안했던 젊은 유권자들의 경우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압도적 진보표밭이다.
지난 주말 실시한 악시오스-입소스 여론조사에 의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투표장 가기가 두렵다는 민주당 유권자는 64%인데 비해 공화당은 29%에 불과했다. 당연히 민주당의 우편투표 지지율은 90%로 공화당 23%보다 훨씬 높다.
트럼프에겐 선거를 연기할 법적 권한이 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의 집권 1기는 차기대통령(그 자신이든, 조 바이든이든) 취임일인 2021년 1월20일에 끝난다고 헌법에 명시되어있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으로서 ‘우편투표’ 이슈에 관해 행사할 수 있는 그의 파워는, ‘부정선거’ 주장의 합리적 근거 여부와 상관없이, 막강하다. 그의 ‘선거조작’ ‘끔찍한 재난’ 경고는 우편투표에 대해 크게 거론된 적 없는 의구심과 불안, 혼란을 조성하는데 이미 성공한 듯 보인다.
그뿐 아니다. 우편투표의 성공적 시행에 필수 요소인 우편배달 서비스와 각 주에 대한 연방 선거지원기금 배정 등에 직·간접적으로 제동을 걸 수도 있다.
사실 트럼프의 우편투표 공격이 다 근거 없는 모함은 아니다. 사기나 선거조작 등 부정선거 위험은 희박하지만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으로 인한 ‘혼란’의 가능성은 다분하다. 문제점들은 우편투표를 대폭 확대한 여러 주들의 여름 예비선거에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6월23일에 치른 뉴욕 연방하원 예비선거가 대표적이다. 4년 전 16만명이 채 안됐던 우편투표 신청자가 금년엔 170만명에 달하자 시스템 과부하로 개표 지연 등 대혼란을 빚으면서 2개 선거구에선 아직도 승자가 결정되지 못했다. 위스콘신에선 부재자 투표를 신청한 수천명이 투표용지를 받지 못했고, 뉴저지에선 우편투표의 10%가 너무 늦게 도착한 이유 등으로 무효 처리되었다. 우편투표의 무효 처리 비율은 투표소 직접투표보다 높다.
원인은 다양하다. 처음으로 대규모 우편투표를 치르는 주정부의 행정 역량과 인프라 구축이 미비해서이기도 하고 미시간 주처럼 선거일 이전에는 우편투표 개표 시작을 법으로 막아 지연을 악화시키는 탓도 있다. 유권자 계몽이 부족해 투표용지를 너무 늦게 반송하거나 서명을 제대로 안한 경우도 허다하다.
신속하고 정확한 개표를 위해선 선거관리 인력을 보강하는 한편 자동화 장비도 구입해야 한다. 유권자 계몽을 위한 안내도 강화해야 하고, 우편투표 용지와 반송봉투의 위조방지 특수처리도 필요하다. 돈이 들어가야 하는데 팬데믹의 영향으로 가뜩이나 재정난에 시달리는 상당수 주정부들에겐 역부족이다. 선거지원 연방기금이 시급한 배경이다.
연방하원에서 통과된 코로나 추가경기부양안에는 36억 달러의 주정부 위한 선거지원 기금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공화의원들의 반응이 냉담한데다 우선 과제들에 밀려 최종 상하원 합의안엔 아예 포함되지 못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팬데믹 영향으로 이미 지연되고 있는 우편배달 서비스다. 우정공사의 심각한 경영난에 트럼프의 반대까지 더해지면 선거일 임박해 폭증할 투표용지 배달 물량을 어떻게 감당할지…우편투표가 팬데믹 공포의 와중에서 가장 안전한 선거방식이라는 것은 확실한데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가 너무 많아 시행이 확대될수록 고민도 함께 깊어지고 있다.
공정한 선거를 원한다면 우편투표를 택한 유권자 여러분에게도 지켜야할 수칙이 있다 - “당신의 표가 무효가 되지 않도록 서둘러 투표하고 가능한 빨리 반송하라. 그리고 결과는 며칠이 걸리든, 몇 주가 걸리든 최대의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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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