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이나 자연재해 등 위기에 처한 도시에 연방군 투입은 20세기 들어서도 여러 차례 있었다. LA한인사회를 강타했던 1992년의 4.29 폭동만이 아니다.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후 워싱턴 D.C.와 시카고에도, 1943년과 1967년 디트로이트의 인종 폭동 때도, 1957년 인종통합교육을 반대하는 백인들의 시위가 격화된 아칸소 주 리틀록에도 연방군이 투입되었다.
1807년 제정된 폭동진압법은 대통령에게 자신의 판단에 따라 소요지역에 군대를 파견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만 대부분 주나 로컬 당국자들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시 아칸소 주정부가 연방대법원의 인종통합교육 명령을 공개 거부하고 연방에 맞섰던 리틀록 위기 정도가 예외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받지 않은’ 연방요원 투입이 논란을 빚고 있다. 7월 중순 오리건 주 포틀랜드 시위현장에 출동한 연방요원들의 강경진압을 계기로 한동안 잦아드는 듯 했던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지난 주말 미 전국 30여개 도시에서 격화되면서 논쟁은 더욱 뜨거워졌다.
시위대와 공권력의 폭력 충돌로 악화된 시위 현장에서 신분도 안 밝힌 채 진압에 나선 정체불명의 이들을 향해 ‘트럼프의 점령군’ 나치의 ‘돌격대원’ ‘비밀경찰’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토안보부 소속 국경순찰대원 등으로 알려진 후 트럼프의 ‘연방경찰’로 눈총 받는 이 연방요원들의 시위현장 투입에 대한 적법성 여부는 한 마디로 명확하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폭동진압법이 발효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시의 치안권은 수정헌법 10조에 의해 ‘미합중국에 위임되지 않은 권한’의 하나로 주와 로컬당국에 속해 있다.
한편 대통령과 국토안보부에겐, 로컬 당국자들이 개입을 원치 않는다 해도, 연방자산을 보호할 법적 권한이 있다고 법 전문가들은 말한다.
9.11 테러 후 국토안보부를 신설한 2002년 법 조항엔 국토안보부 장관이 연방시설 보호를 위해 소속 공무원들을 연방 법집행관으로 임명할 수 있으며 “그들은 무기를 휴대하고, 문제가 된 시설 안팎에서 조사를 진행하거나, 미국에 반대하는 공격 시 연방법 위반 중범 혐의에 대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면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포틀랜드에 투입한 연방요원들이 보호대상인 연방건물로부터 멀리 떨어진 거리의 시위현장에 ‘연방경찰’처럼 진입해 강경진압에 나선 것은 “연방법 집행이 아닌, 평화시위 방해와 정당한 근거 없는 부당체포로 수정헌법 1조와 4조 위반”이라고 LA타임스는 어윈 케머런스키 UC버클리 법대 학장의 해석을 인용해 지적했다.
트럼프는 연방시설 보호나 시위 진압만이 아니라 폭력범죄 퇴치 등을 위해 시카고, 뉴욕 등 다른 도시에도 연방요원 배치를 이미 확대했거나 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런 조처를 정당화하기 위해 어떤 법적 권한을 원용할 지는 확실치 않다.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연방요원 투입의 대상이 된 도시의 시장들은 공동으로 트럼프 행정부에 즉각 철수를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하는 한편 연방의회 지도자들에게도 투입을 불법화시켜 막아달라고 촉구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신속한 조처를 약속했지만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한지는 미지수다.
현행법 하에서 허용된 국토안보부의 포괄적 권한에, 시위대의 철거대상 동상 보호를 위해 발동한 트럼프의 행정명령까지 합하면 연방 투입의 법적 근거가 그리 허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안보부의 법집행 병력은 6만여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다. 국토안보부가 없었다면 트럼프의 연방요원 투입은 힘들었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상당수다. 그래서 더욱 트럼프가 앞으로도 국경순찰대 등 국토안보부 요원들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연방경찰’로 이용할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다.
난관에 처한 트럼프의 재선 캠페인이 가장 기대를 거는 메시지가 ‘법과 질서’라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시작될 때부터 트럼프는 1968년 닉슨의 성공적인 ‘법과 질서’ 캠페인을 도입했다. 처음엔 큰 호응을 못 받았던 이 메시지는 “경찰예산 끊어라”가 시위의 주요 구호로 등장하면서부터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연방요원 투입이 트럼프 캠페인의 ‘법과 질서’ 전략의 일환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투입 대상이 모두 민주당 지역인 것도, “당신은 조 바이든의 미국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TV광고가 방영되고 있는 요즘 공공건물이 불타고 파괴되는 폭력시위 현장이 계속 뉴스 조명을 받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 “트럼프 전략에 말려들지 말라”는 민주당 일각의 경고도 이어지고, “연방요원들을 정치무대 소품으로 이용하는 것은 ‘법과 질서’가 아니다”라는 언론의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어떤 선거에서든 불안과 공포 조성의 효과는 이성적 판단을 뛰어 넘는다. LA타임스는 “이 사안에선 트럼프의 입지가 유리하다. 폭력시위가 끝나면 자신의 강경대응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고, 계속되면 공포전략이 더 효과를 낼 것이다”라고 분석한다.
인종차별 항의시위를 지지하는 한편 불안과 공포로 흔들리려는 표밭을 안심시킬 수 있는 확고한 대응을 늦지 않게 과시해야 할 바이든의 행보가 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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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