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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미국 여권

2020-07-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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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국의 여권을 가지면 비자가 면제되거나, 도착지에서 바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그 나라가 갖는 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권 파워가 가장 센 나라는 어디일까? 일본이다. 191개국에서 이런 혜택을 받고 있다. 2위는 싱가포르로 190개국, 3위는 한국과 독일로 189개국을 사전에 비자를 받을 필요없이 입국할 수 있다. 미국은 185개국으로 영국, 스위스, 노르웨이 등과 함께 공동 7위에 랭크돼있다.

특정국의 여권이 이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국가의 수는 평균 107개국 정도라고 한다. 물론 평균을 훨씬 밑도는 나라도 많다.


예컨대 북한 여권을 가지면 39개국, 리비아와 팔레스타인은 38개국, 파키스탄 32개국, 소말리아와 예멘 33개국, 시리아 29개국, 이라크 28개국, 최하위는 아프가니스탄으로 26개국에서만 이런 혜택이 가능하다. 전쟁이나 테러 위험 등 국가 이미지가 그런 나라들이 여권 파워에서 바닥권이다.

여기까지는 각국 여권의 힘을 정기적으로 지수화해서 발표하고 있는 ‘헨리 패스포드 인덱스’에 근거한 공식 자료다. 이 지수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임시 입국금지 등의 변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것까지 고려하면 이야기가 크게 달라진다. 각국이 코비드-19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방어하고 있나 하는 것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EU는 7월1일부터 14개국의 회원국 입국을 허용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와 함께 한국과 일본이 포함된 반면, 여권 파워 2위였던 싱가포르는 제외됐다. 따라서 현재 한국은 독일과 함께 여권 파워에서 랭킹 2위에 올라있다.

잘 아는 것처럼 미국민은 현재 EU는 물론 이웃 나라인 캐나다 입국도 전면 금지돼있다. 높은 코비드-19 발병율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미국 시민은 지금 여행자유에서 멕시코인과 같은 수준의 대접을 받고 있다. 세계 25위권. 얼마 전 CNN을 통해 이같은 사실이 보도됐다.

미국민이 가장 불편해 하는 것은 유럽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인데 조만간 이 조처가 풀릴 가망은 거의 없다. 예일대학의 한 전염병 전문가는 “유럽 휴가는 최소 2021년까지는 연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EU는 매 2주마다 각국의 코비드-19 발생 건수를 기준으로 그 나라 국민의 입국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적어도 EU 회원국의 평균 발병률과 비슷해야 입국이 허용된다. 지난 6월 중순을 기준으로 하면 EU의 코비드-19 발생 건수는 인구 10만명에 14건 정도. 미국은 이보다 10배가 넘는 145건이었다.

EU 회원국의 영주권을 갖고 있거나, 취업비자 소지자, 가족이 살고 있는 경우 등을 제외하면 이 기준에 따르면 일반 미국인은 EU에 입국할 수가 없다. 미국 일부에서는 EU의 미국 여행객 전면 불허 조처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불만이 높지만 역지사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이해할 만하다는 의견도 많다. 내 탓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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