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코로나 적응’의 현실

2020-07-16 (목) 박록 고문
크게 작게
길고 힘들었던 기다림과 희생의 보람도 없이 3월 중순으로 되밀려온 것일까. 갑자기 멈추어서버린 기이한 일상을 견디어온 지난 넉 달을 도둑맞은 듯 황당하고 두려운 7월 중순이다.

불안한 봄이 가고 햇살 뜨거운 여름이 오면 그래도 좀 좋아지겠지… 정부와 개인들이 공유했던 낙관론의 물밑에선,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가 맹렬하게 확산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의 시각으로 보든, 어떤 기준을 적용하든 미국은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지고 있는 중이다.

만약 미국의 모든 코비드-19 환자들이 한 도시에 산다면 그 곳은 전국에서 3번째로 큰 도시가 될 것이라고 악시오스는 비유한다. 인구 830만명의 뉴욕이 1위, 400만명 LA가 2위, 그리고 15일 현재 343만명을 넘긴 코비드-19가 3위다. 최근의 증가세가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LA를 따라잡을 것이다.


지난 2주여 동안 미국은 7번이나 1일 신규환자 수를 경신했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전국을 할퀴면서 미국을 죽음의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확산세를 보인 곳은 지난 주말 ‘1일 신규환자 1만5,300명으로 최다 신기록’을 세우면서 뉴스의 각광을 받은 플로리다 등 남서부 주들만이 아니다.

확산의 폭은 충격적일 만큼 넓다. 43개주에서 증가를 기록했다. 20여개 주에선 지난 봄 발병 초기 때보다 훨씬 빠른 확산율을 보이고 있다. 아이다호의 경우 4월초 매시간 5건에서 5월 중순 1건으로 줄었다가 지금은 20건으로 폭증했다. 6월24일에 하루 4,629명을 기록했던 캘리포니아의 신규환자(LA타임스 집계)는 7월14일 1만1,142명으로 2.5배나 늘어났다.

다급해진 주정부들은 한두 달 전 허용했던 경제 재개를 되돌려 두 번째 셧다운에 돌입하고 있다. 이번 주 들어서자마자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다시 봉쇄령을 발동하고 모든 비필수 실내영업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예약이 덜 몰릴 8월로 미루었던 헤어컷은 미용실 2차 영업금지령과 함께 기약이 없어진 것이다.

솔직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시작되었던 지난봄에는 모든 것이 너무 불확실해 어느 정도 낙관이 가능했다.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행사가 취소되고, 아이들이 부엌식탁에 앉아 온라인 수업으로 새 학년을 맞을 것은 상상조차 안 했었다.

차츰 팬데믹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며칠마다 9.11 테러 때보다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가며 가차 없이 진행 중인 비상사태라는 것을 실감한 후에도, 오래지 않아 끝날 것이라고 믿었다.

당국의 지침을 충실히 따라 외출을 자제했으며, 마스크와 장갑, 안면보호대까지로 중무장한 후 마치 전쟁터에 나가듯 장보러 나섰고 마켓 앞 6피트 간격으로 늘어선 긴 줄에서 따가운 햇볕을 참아냈다. 최악의 4월과 5월을 그렇게 견디어냈다.

캘리포니아의 신규환자 수는 감소세를 기록했고, 뉴욕의 코로나 참상을 화면으로 지켜보며 초만원 사태를 우려했던 병원들도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성공적으로 억제되었다는 확신 속에서 캘리포니아의 셧다운 조치가 해제되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쓴 사람과 안 쓴 사람들이 뒤섞인 채 붐비는 해변과 공원과 술집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제법 활기가 돌았고, 정말 오랜만에 식당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정상’으로의 회복이 조금씩 기대되던 순간, 코로나바이러스 재확산의 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놀랄 일은 아니다. 전국이 다투어 경제 재개에 돌입할 때부터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계속해온 경고가 현실로 나타났을 뿐이다. 경계심이 해이해진 우리가 귓가로 흘려들었던 것이다.

당장 눈앞에서 재확산 경고가 현실로 펼쳐지고 있지만 연방정부의 전국 차원 로드맵은 아직 제시될 기미가 없다. 과학의 증거와 데이터를 근거로 정책을 시행해야할 정부가 과학에 싸움을 걸면서 정치와 과학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멈추면 안 된다”고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정치인들은 경제재개 강행을 역설한다. 두 번째 셧다운은 경제를 깊은 침체에 빠지게 할 것이며 그 후유증은 코비드-19 못지않게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연방·주·로컬 정부들이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곳곳에선 두렵고 불안한 서민들의 생계가 극한으로 몰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영리 센추리재단에 의하면 실업수당 신청자 중 57%만 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온 종일 걸어도 아무도 답하지 않는 EDD 전화에 좌절한 40대 실직 가장은 밤잠을 못 이룬다면서 말했다. “온 가족이 나만 바라본다. 난 화장실에 숨었다. 그리고 울었다” 다시 문 닫긴 절망 속에서 폐업을 고심하는 소규모 업주들도 늘어나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금 셧다운을 비롯한 전국적 강력조치로 대응하지 않으면 훨씬, 훨씬 더 악화될 것이라고 거듭 경고하며 말한다. “발생 초기 첫 번째 기회를 놓쳤고 지금이 두 번째 기회다. 세 번째는 없을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해를 넘겨도 멈추지 않을 듯한 코로나바이러스도 두렵고, 캄캄한 터널 속 경기침체도 불안한 우리, 보통사람들은 제각기의 사정에 따라 정치와 과학이 맞선 대립의 어느 지점에 엉거주춤 선 채 아직 끝의 시작도 안 보이는 장기전 속으로 떠밀리고 있다.

<박록 고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