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경제 재개와 함께 비상대응에서 회복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은 주정부들의 ‘코로나 적자’ 재정난이 부각되고 있다. 그중 캘리포니아만큼 강타를 당한 곳도 없을 것이다. 8주 만에 60억달러 흑자예산이 543억달러 적자로 돌변했다.
새 회계연도가 7월1일에 시작되는 캘리포니아의 주지사는 매년 1월 예산안을 공개하고 주의회는 주 헌법에 따라 6월15일까지 균형예산을 통과시켜야 한다. 시한을 못 지킬 경우 의원들의 급여가 ‘몰수’되는 데드라인을 2주여 앞두고 새크라멘토에선 26일 하원 전체가 모인 청문회가 열리는 등 주의회의 예산안 심의 절차가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1월 발표한 야심찬 예산안이 코로나 위기로 물거품이 된 후 개빈 뉴섬 주지사가 5월14일 주의회에 다시 제출한 수정 예산안은 코로나가 할퀴고 간 어두운 현실을 반영한다.
주요 경제지표들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실업수당 청구가 500만건을 넘어서면서 금년 실업률이 18%로 치솟고, 3대 세수입원인 개인소득세, 판매세, 기업세가 25%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5월 수정안의 세수입은 1월 예산안에 비해 410억 달러나 줄어들었다. 그러나 지출은 헬스케어와 코로나 대응 비용으로 130억 달러가 더 늘어났다.
수입은 대폭 줄고 지출은 대폭 늘어났으니 파산을 면하려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뉴섬 행정부는 지난 몇 년 비축해온 예비비에서 내부 차입, 대출상환 유예, 회계분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적자해소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적자해소의 변치 않는 정답은 증세와 삭감이다. 뉴섬도 전자담배에 대한 베이핑 택스, 일부 택스의 크레딧과 공제 제한 등 소규모 세수 확대는 시도하고 있지만 실질적 해결책이 될 대규모 증세는, (선거의 해에 언감생심!) 주지사뿐 아니라 주의원, 어느 누구도 내켜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삭감, 또 삭감”이다. 공립교육 예산 대폭 축소와 주 공무원 봉급 10% 삭감이 포함되었고 환경보호와 교도소까지 곳곳의 예산이 깎이면서 모든 분야의 긴축 운영을 예고했다.
삭감 대상들은 즉각 반발했다. 공무원 노조는 단체교섭 대응을 시사했고 교육계는 “안전한 개학이 위협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학에 대비해 간호사, 카운슬러, 관리인 등의 인력 보강이 절실한 시점에서 예산 증액 아닌 삭감은 감당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1월 예산안에 포함되었던, 많은 서민들이 기대했던 차일드케어 확대, 서류미비 노인들에 대한 메디캘 확대, 홈리스 주거보조와 시니어 식사 제공 등 플랜도 모두 철회되었다.
재정난에 직면할 때마다 삭감의 칼날이 먼저 겨누는 대상은 노인과 장애자, 저소득층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인사회가 늘 촉각을 세우는 메디캘도 적잖은 삭감의 대상이다.
연방과 주정부가 공동운영하는 저소득층 의료보험 메디캘은 수혜자들에겐 생명선인, ‘필수’ 복지프로로 꼽힌다. 주민 3명 중 1명꼴인 1,300만명이 혜택을 받고 있는데 7월초엔 수혜자가 최대 1,5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뉴섬의 1월 장밋빛 예산안에 의하면 메디캘은 새 회계연도부터 확대될 예정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당시 삭감되었던 치과, 보청기, 발병, 안경 등의 혜택 복원이 포함되었었는데 이번에 물론 모두 취소되었다.
일반 성인에 대한 메디캘 수혜자격 소득 상한선은 연방빈곤선의 138%로 개인의 경우 연 1만7,600달러다. 그러나 노인과 장애자는 1만5,500달러다. ‘시니어 페널티’로 불리는 이 차이를 없애고 노인 수혜자를 늘리려던 뉴섬의 계획도 5월 수정안에선 사라졌다.
기존 혜택 중 간병인프로그램(IHSS)에서 2억500만 달러가 깎여나간다. 62만5,000명 수혜자의 간병 시간 7% 삭감에 해당된다. 3만6,000명이 이용하는 어덜트 데이케어 프로그램을 폐지시키고, 너싱홈의 대안으로 시행되어온 자택 돌보미 프로그램도 없앨 계획이다.
자산 소유 노인 수혜자가 사망할 경우 현재 너싱홈 서비스 등으로 한정된 환불추진 해당 서비스의 범위는 확대할 예정이다. 보통 저소득 노인에겐 집이 유일한 자산인데 주정부가 이 집에 대한 권리 주장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민주당도 반대하는 대폭 삭감의 칼날을 피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방정부의 추가지원이 실현되면 막을 수 있다. 5월15일에 통과된 연방하원의 추가경기부양안은 주와 로컬 정부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최우선과제로 삼아 거의 1조 달러를 배당하고 있다. 하원 부양안이 그대로 성사된다면 캘리포니아는 510억 달러를 받는다. 예상 적자를 메울 수 있는 액수다.
그러나 양극화된 워싱턴 현 정치기류에선 실현 가능성이 낮다.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 지도부가 반대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지원에서 반대로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주정부를 파산지경으로 몰아갔던 재정난 당시 사회안전망에 대한 “삭감, 또 삭감”으로 매일이 불안했던 고통을 캘리포니아는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던 그때의 막막함과 달리 이번엔 ‘일시적’이라는 한줄기 희망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코로나 불안은 아직 여전한데 삭감 폭탄이 장착된 캘리포니아의 예산시계가 다시 재깍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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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