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메릴랜드에서 열린 ‘보수 정치행동 컨퍼런스’는 사회주의 성토장이었다. ‘미국 대 사회주의’라는 배너를 내건 컨퍼런스에서 연사들은 급진적 민주당으로부터 미국을 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시는 중국에서 코로나19가 급속히 번지고 있던 때였다. 컨퍼런스에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인 래리 커들로는 “바이러스는 결코 미국경제를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면서 “미국경제를 침몰시킬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뿐”이라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후 불과 몇 달 사이에 세상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커들로의 호언장담과 달리 바이러스는 미국경제를 침몰시키고 있으며, 아이러니컬하게도 위기의 미국을 구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는 공화당이 그토록 혐오해온 사회주의적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붕괴된 비현실적 현실 앞에서 ‘큰 정부’ ‘작은 정부’라는 해묵은 이념 논쟁은 아무 의미 없는 도식이 돼버렸다.
역사는 점진적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반전과 충격의 시나리오가 역사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캐나다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나오미 클라인은 자신의 책에서 위기의 역사와 그에 뒤따르는 변화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실제이든 아니든 오직 위기만이 진짜 변화를 만들어낸다. 위기가 발생하면 이제껏 밀려났던 사상에 의거한 조치들이 취해진다. 또한 과거엔 정치적으로 불가능했던 일들이 오히려 불가피해진다.” 클라인이 긍정적인 변화만을 언급한 건 아니지만 혁명적 변화는 예외 없이 위기에 의해 촉발된다는 지적만은 논박하기 힘들다. 미국 역사만 훑어봐도 곧바로 확인된다.
미국사회 개조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개혁정책은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였던 대공황의 산물이었다. 루스벨트는 미국의 번영을 되살리고 지속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시장의 법칙을 ‘새롭게’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뉴딜 정책으로 경제를 수렁에서 건져낸 그는 1936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을 통해 “자유는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기회를 요구한다. 시대의 기준에 맞는 품위 있는 삶, 즉 겨우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추구하며 살 수 있는 삶을 말이다”라고 역설했다.
그의 신념에 따라 근로자들의 단체교섭권과 금융기관들에 대한 엄격한 규제, 그리고 노년층을 위한 사회보장 연금 도입 등 획기적인 개혁이 이뤄졌다. 만약 대공황이 엄습하지 않았다면 미국사회의 진전은 훨씬 더디었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모두에게 전례 없는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가라앉고 난 이후 어떤 영구적인 변화가 초래될지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무언가 분명 달라질 수밖에 없을 터이지만 그 변화가 어떤 형태 어떤 내용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몇 달 사이 일어난 가장 획기적인 변화를 꼽으라면 재난지원금 현금지급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꼭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넓어지면서 현금지급에 대한 기존의 거부감이 많이 희석된 상태다. 그러면서 매달 모든 국민들에게 일정액의 소득을 지급하자는 ‘기본소득제’가 조금씩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한국의 경우만 봐도 재난지원금에 대한 호의적 여론이 형성되면서 기본소득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60%를 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부활절 서신을 통해 “지금이야말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도입할 때”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념적 간극이 그 어느 때보다 벌어져있는 정치 환경에서 이런 논쟁은 갈등만을 키우는 소모적 싸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형성된 비일상적 환경이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가 지적했듯, 비상상황에서는 일반적으로 논의 과정만 몇 년이 걸릴 결정이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논의가 위기 대응 속에서 파생된 일시적 담론으로 그칠지, 아니면 자본주의 모순과 시장경제 부작용을 보완해줄 제도로서 설득력을 얻어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한 국가, 한 사회의 상상력과 지도자들의 역량에 달린 문제다. 100여 년 전, 심지어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우리는 지금 너무도 당연한 듯 누리고 있지 않은가.
yoonscho@koreatimes.com
<
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