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가 아직 침투하지 못한 곳은 남극만이 아니다. 미 전국 3,143개 카운티 중 231개도 아직 코로나 청정지역이다. 나라 전체가 코로나 태풍에 휩쓸려온 넉 달 내내 이들 카운티는 ‘확진자 0명’ 기록을 지켜왔다. USA 투데이의 분석 팀이 5월15일까지 집계한 결과다.
숫자는 줄어들 것이다. 5월 첫 2주 동안 40개 카운티가 0명에서 최소 1명 이상으로 바뀌었다. 5월1일 조지아 주와 테네시 주엔 ‘0명 카운티’가 각각 2개였다. 5월 중순 조지아엔 하나도 없고 테네시엔 한 개만 남았다. 아이오와 주의 8개 ‘0명 카운티’는 같은 기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미국 내 코로나 청정 카운티는 중서부에 103개로 가장 많고, 서부 72개, 남부 57개 순이다. 동부엔 단 한 개도 없다. 텍사스가 34개로 가장 많고, 노스다코타, 몬태나, 알래스카도 각기 주 전체 카운티 4개 중 1개가 확진자 0명을 기록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58개 카운티 중에도 북동쪽 끝의 모독카운티를 비롯한 3개가 아직은 청정지역이다.
대부분 외딴 농촌지역이지만 비슷한 여건의 이웃 카운티에는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확진자 발생이 ‘만약’ 아닌 ‘언제’로 각오하면서 주민들은 손 씻기. 거리두기를 준수하고, 너싱홈, 교회, 학교의 잠정폐쇄령을 내린 당국은 대책 미팅을 계속하고 있다. 테네시 주의 행콕 카운티 주민들은 외출 제한령 준수 평가에서 주 최고점수를 받기도 했다.
물론 이들 카운티가 확진자 0명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외따로 고립된 지역의 낮은 인구밀도다. 주민들의 면역성이 특별히 강해서가 아니라 바이러스에 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행콕 카운티의 톰 해리슨 군수는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는 우릴 볼 수 없다. 일부러 산을 넘어와야 한다. 아마 그래서 코로나바이러스도 우릴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연적인 거리두기’가 확진자 0명의 청정지역을 유지하는 절대적 요인임을 뜻한다.
미국의 코로나 감염 확산도 전체적으로 둔화되고 있다. ‘인위적인 거리두기’의 성과다. 자택대피령에서 식당 영업중단에 이르기까지 미 인구의 95%를 대상으로 한 각 주와 로컬 정부의 거리두기 정책이 아니었다면 4월말 기준 환자 수가 실제보다 35배 이상 많았을 것이라는 켄터키대학의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미국은 전염병 확산 코스의 아주 위험한 순간에 다다랐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한다. 미 전체인구의 3% 정도만이 검사를 받았기 때문에 바이러스 확산의 규모와 경로는 불확실하다. 그래서 신규확진과 사망의 증가폭이 감소세를 보이는 코로나 대응의 ‘진전 상황’이 아직 허약하다. 그런데 ‘둔화’를 희망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재발 위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시켜온 거리두기 제재를 해제 또는 완화하면서 경제 개개에 돌입한 것이다.
초기 늑장대응으로 피해가 컸던 미국은 그래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확실하게 시행하면서 병원들이 환자 급증에 대비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러나 감염 확산속도 억제에 효과적이었던 거리두기로 인한 경제적 대가는 엄청났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올 때까진 확산 억제가 유일한 대책임을 알고 있어도, 아직 과학과 데이터에 근거한 재개의 안전 기준을 채 갖추지 못했어도, 거리두기를 무한정 계속할 수는 없는 이유다.
준비가 되었건 아니건 미 50개주는 모두 경제 재개에 돌입했다. 4월말 강행한 조지아 주를 선두로 지난 2~3주 동안 대부분의 공화당 주들이 재가동에 들어갔고 어제 마지막으로 코네티컷 주가 합류했다. 제한된 재개만을 허용했던 캘리포니아도 재개 기준 대폭 완화를 발표했으며 제재 완화에 극히 신중을 고수해온 LA카운티까지 7월4일 전면 해제 계획을 밝혔다.
경제 재개가 모멘텀을 얻으면서 거리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재개된 공원과 해변엔 인파가 몰리고 아직 자택대피령이 풀리지 않은 LA 거리의 트래픽도 늘어났으며 제재가 해제된 지역의 식당과 술집은 마스크를 안 쓴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어느 정도의 제재 완화가 코로나 감염에 영향을 미칠지는 당분간 확실치 않을 것이다. 3주 전부터 재개가 시작된 주들의 감염통계가 나오고 있지만 “17개 주에선 감염이 늘고 16개 주에선 줄었다”는 19일 CNN의 보도처럼 엇갈리고 있어 성급한 재개의 역효과를 지적하기에도 애매하다. 최소한 수주가 더 지나야 보다 정확한 분석이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인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던 전염병들이 어떻게 끝났는가를 정리한 뉴욕타임스 보도를 통해 역사학자들은 ‘코로나의 종말’에 대해서 언급했다. 코로나의 종말은 질병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공포와 불안에 지쳐 질병과 함께 사는 것을 배우기 때문에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감염과 사망률이 급락하는 의학적 종말 전에 질병에 대한 공포가 약화되는 사회적인 종말을 뜻한다. 탈진하고 좌절한 사람들이 “이제 그만!”을 외치는 순간이라고 예일대 역사학자 네이오미 로저스는 설명한다. 경제 재앙에 압도당한 곳곳에서 이미 그 현상은 일어나고 있다.
이 지루하고 긴 봄을 지나 위태로운 여름을 넘어 안개 속의 겨울로 향하는 불안한 여정의 어느 지점에서든 코로나의 의학적 종말을 알리는, 그래서 모두가 ‘코로나가 없는 곳’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낭보를 우리는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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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