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상으로 뼈를 상해 거동을 할 수 없게 된 어머니는 지금 노인 요양병원에 계신다. 마지막으로 찾아뵌 게 3월초니 두 달 넘게 대면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로 4월말까지 면회금지라더니 5월도 면회가 안 된다는 통지가 왔다. 아쉽게나마 어머니날 꽃은 병원 데스크를 통해 전달했다. 병원은 받은 꽃을 한 시간 동안 햇볕에 노출시켜 살균한 다음 환자에게 갖다 준다고 했다.
평소 요양병원을 찾을 때마다 노인들을 위해 온갖 궂은일을 하는 직원들의 노고에 고맙다는 마음이 절로 들곤 했다. 꼭 돈만을 보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병원이 사실상 봉쇄된 지금 그 마음은 한층 더 커졌다. 거동이 불편하고 인지능력이 거의 없는 병원 내 많은 노인들은 전적으로 이들의 도움에 의지해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노인들을 일일이 먹여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침대보를 바꿔주는 직원들의 수고가 없다면 노인들은 생명을 부지해나갈 방도가 없다. 스스로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갓난아기와 다름없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코로나19 창궐로 집단적 피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곳이 바로 요양병원이라는 사실이다. 입원해있는 노인들은 물론 이들을 돕고 있는 직원들까지 코로나19로 목숨을 잃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노인 요양병원은 코로나19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계신 병원에서도 한명의 노인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전체 입원 노인들과 직원들에 대한 검사를 실시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다행히 어머니는 음성 판정이 나왔다. 검사를 통해 새로 확진 판정을 받은 3명의 노인은 다른 곳으로 이송됐다. 요양병원 노인들과 그곳에 사실상 갇힌 채 이들을 돌보고 있는 직원들을 떠올리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이전에는 제기하지 않았던 새로운 질문 앞에 직면해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정부 당국이 ‘필수 근로자’(essential worker)로 분류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일하도록 하고 있는 근로자들을 보며 이들이야말로 우리의 생존 싸움 최전선에 투입된 전사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요양병원의 돌보미들, 그리고 대중교통 수단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이동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핸들을 잡는 버스 운전자들, 음식점의 직원들, 우편물과 소포 배달원 등이다.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쓴 채 노동의 일선에 뛰어든 이들 덕분에 사회는 최소한이나마 굴러가고 있다. 이들의 선택이 자발적인 것이든 마지못한 것이든 그 의미와 중요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저임금 육체근로자 정도로 쉽게 치부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계층이야말로 우리 생존을 위한 필수노동을 하는 사람들이었음을 우리는 뒤늦게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가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 봉쇄를 겪으며 사람들은 ‘이제 보니 투자은행가 없이는 살 수 있지만 육체근로자들 없이는 못 살겠구나’라고들 한다”고 말한 게 가슴에 확 와 닿는다.
이런 각성은 달라진 인식과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던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상원의원과 로 카나 연방하원의원이 공동 발의한 ‘필수 근로자 권리장전’(Essential Workers Bill of Right)은 눈여겨 볼만하다.
이 법안은 필수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호 장비와 위험수당을 지급하고 유급병가와 가족병가를 제공하며 노조를 조직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해주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노동계가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해온, 결코 새롭지 않은 내용들이지만 코로나19 긴급사태를 겪으며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이다.
저임금 필수 근로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활발한 논의를 통해 적극적으로 추구해나가야 할 사회적 책무이다. 이들이 위기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회의 지속을 위한 노동에 나설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한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코로나19 재난 같은 위기 속에서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것은 이런 사변적인 글이나 끄적대는 칼럼니스트가 아니라 저임금 필수 근로자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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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