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란 언제나 현직에 대한 심판이기 마련이지만 코로나 재앙이 휘몰아친 금년의 대선은 더욱 그럴 것이다.
백악관까지 침투한 코로나바이러스는 8만여 미국인의 생명을 앗아갔고, 사상 최하 수준으로 떨어졌던 실업률은 락다운 6주 만에 대공황 이후 최고로 치솟았으며, 감염 확산이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된 경제 재개는 바이러스 재발 경고로 엉거주춤 불안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
장밋빛 경제를 한껏 과시하려던 트럼프의 재선 전략은 갑자기 사라진 수천만개 일자리와 함께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대통령은 점점 거세지는 역풍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대부분 현직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다. 지난 100년 동안 실패한 경우는 대공황 시작 때의 허버트 후버를 비롯해 지미 카터, 조지 H.W. 부시 정도였다. 모두 경제 침체가 주원인이었다.
로널드 레이건의 “여러분은 4년 전보다 살기가 나아졌습니까?”란 질문이 카터의 몰락을 상징한다면, 1992년 부시를 무너트린 한마디는 빌 클린턴 캠페인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였다. 당시 실업률은 7.5%였다. 지난주 노동부가 발표한 4월 실업률은 14.7%,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은 실제로는 더 높아 25%에 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충격적 수치가 트럼프의 재선 실패를 장담하는 것은 아니라고 CNN은 분석한다. 걸프전 승리로 89%까지 치솟았던 부시의 지지율이 표밭의 관심이 경제로 바뀌면서 40% 이하로 곤두박질 친 당시와 현재 트럼프 시대의 정치 환경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 정치세계의 양극화 분열은 이슈 자체의 중요성을 감소시키고 있다.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강력한 경제성장에도 50%를 넘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초토화된 경제난국에서도 평소 45% 지지율은 그대로다. 양극화가 충성스런 핵심표밭을 유지시키면서 트럼프에겐 탄탄한 정치적 발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코로나 부실대응에 대한 비판의 소리는 높지만 유권자들에겐 전 세계를 휩쓴 재난에 대해 트럼프에게 얼마나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도 불확실하다고 CNN은 지적한다. 특히 코로나 확산을 막으려는 락다운 조치로 인한 경제난국에 대해선 “민주당도 나를 탓하지 않는다”고 트럼프는 자신한다.
공황수준의 실업률에도 재선 전망이 별로 흐려지진 않았지만 국가 위기의 와중에서 현직 대통령의 재선이 코로나 이전보다 힘든 싸움이 될 것은 확실하다. 선거전략 수정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그래도 ‘대선 후보’ 트럼프의 대표적 강점과 약점은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최대 약점은 사실상의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에게 이겨본 적 없는 전국 지지율이다. 4월 이후 실시된 19개 전국 여론조사에서 단 한 차례도 바이든을 이기지 못했다. 두 번은 동률이었고 열일곱 번은 2~11%포인트 차이로 뒤졌다. 정치전문 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의 집계다. 경합주에서도 바이든에게 밀리고 있다. 2016년 트럼프가 전체득표수에서 패하고도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시간 등 경합주에서의 승리로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긴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경합주에서 바이든 인기가 심상치 않다. 트럼프가 지지율 부진에 침울해하며 조바심을 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도 전한다.
바이러스 확산 억제에서 경제 재개로 정책 포커스를 급선회하고 본격 재선 행보에 나선 트럼프가 경제 재개 캠페인 홍보차 오늘 방문할 예정인 의료장비 제조공장의 위치가 펜실베이니아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로선 반드시 이겨야하는 곳인데 여기서도 바이든에게 6.5%포인트 차이로 뒤지고 있다.
트럼프의 최대 강점은 여전히 경제다. 자신을 ”경제회복의 최적임자“로 내세울 것이라고 월스트릿저널은 예상한다. 가을 무렵 유권자들의 주요 이슈는 건강 아닌 경제가 될 수 있다. 한 민주당 전략가는 “유권자들이 경제난국 타개를 위해선 사업가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우려된다”고 말한다. 이미 트럼프는 “난 한 차례 경제 호황을 이끌어냈다. 다시 할 수 있다”라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경제는 트럼프가 집권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분야다.
지지율엔 상관없이 베팅시장은 트럼프 승리에 돈을 걸고 있다. 승리 예상의 근거는 일시적 침체가 11월까진 회복 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경제낙관론이라고 악시오스는 진단한다.
트럼프의 강력한 경제 드라이브가 미국을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것인지, 섣부른 재개 때문에 “피할 수 있는 고통과 죽음을 겪게 될 수 있다”는 앤서니 파우치 박사의 경고가 현실이 될지 - 앞으로 대선판도가 다시 어떻게 요동칠지 지금으로선 예상조차 힘들다.
다행히 파우치가 경고하는 악몽을 피할 수 있다면 대선의 향방은 바이든의 역량에 달렸다. 트럼프 책임론을 각인시키는 설득력에 더해 공중보건과 경제회복을 병행하는 명확한 어젠다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는 현역의 유리한 입지를 활용해 현장을 뛰기 시작했는데…아직 자택 지하실 스튜디오에 발이 묶인 채 코로나에 집중된 조명 뒤에서 존재감마저 미미해진 바이든에겐 갈 길이 급해졌다.
대선까지는 173일 남았다. 아직은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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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