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인삼각’ 세상

2020-04-29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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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면서 그동안 가려져 있거나 외면해 왔던 수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들, 특히 빈부격차가 초래한 미국사회의 일그러진 실상과 모순이 눈 녹은 후 맨땅처럼 속속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19가 무섭게 번지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확산되고 많은 근로자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이것은 남의 얘기일 뿐이다. 생업을 위해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게 이들의 냉혹한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부유층들은 감염의 위험을 피하려 안전한 곳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19 창궐 지역의 부자들은 자신의 별장이나 보다 안전한 지역의 주택을 빌려 빠져나가고 있다. 한 언론은 이것을 ‘부자들만의 코로나19 치료법’이라 꼬집었다. ‘감염병 계급사회’가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앞에서는 경제력이나 건강상태에 관계없이 누구나 위축된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이런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도피할 수는 있겠지만 사회 전체가 안전해지기 전까지는 결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누구도 영원히 혼자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바이러스에 한층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려온 나라들이 코로나19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바이러스는 인종이나 국가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또 바이러스는 계층과 계급도 가리지 않는다. 돈 많고 유명한, 그리고 권력을 가진 인사들의 감염사례가 속속 터져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19는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으면서 삶을 위협하고 있지만 마냥 부정적인 여파만 불러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누구도 홀로 생존할 수 없기에 같이 힘과 지혜를 모으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새삼스러운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로부터 교민들을 태운 전세기가 들어왔을 때 관련 기사에 달린 한 댓글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 아이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다 안전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 아이도 안전하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19는 우리 모두에게 공동체와 사회적 협력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자신의 SNS를 통해 “우리의 싸움은 거대한 이인삼각 경기”라며 “나 혼자 안 아파도 소용없고 나 혼자 잘 살아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서로 보조를 잘 맞추며 같이 호흡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모두가 안전해질 때 나도 비로소 안전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이 한 국가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모든 국가들이 마음을 열고 서로 도우며 코로나19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한다. 지구촌 전체가 안전해지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동과 교류가 일상화된 세계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코로나19의 교훈은 의료의 공공성과 복지 확대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계층격차가 줄어들고 경제적 평등이 넓어질수록 그 사회는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대응책으로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긴급 재난소득을 나눠주고 있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과거 같았으면 ‘빨갱이 정책’이란 비난을 들었을 조치지만 지금은 수구보수 조차 별다른 시비를 걸지 않는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빈곤한 사람들은 물론 잘 사는 사람들까지도 건강한 삶을 누리기 힘들어진다는 것은 영국의 대규모 사회역학조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모든 구성원들의 심리적인 안정감이 저하되고 이것은 만성적 스트레스로 이어져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부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는 분명 혹독한 재난이지만 연대와 공동체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무의미한 시련만은 아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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