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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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등비늘처럼 우뚝 솟은 저 바위봉들을 향해…

2020-04-24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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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Five Fingers (5,174’)

공룡의 등비늘처럼 우뚝 솟은 저 바위봉들을 향해…

산 아래 남쪽에서 바라본 Five Fingers.

공룡의 등비늘처럼 우뚝 솟은 저 바위봉들을 향해…

동북쪽 기슭에서 본 Five Fingers.


공룡의 등비늘처럼 우뚝 솟은 저 바위봉들을 향해…

Five Fingers산의 최정상 부위.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오승은’이란 분이 지은, 중국의 4대 기서의 하나로 꼽히는, ‘서유기’의 한 대목을 찾아 읽어본다.

<<석가여래가 오공에게 물으신다. < 그대는 장생과 변화의 술법 외에 또 무슨 재간이 있기에 이 옥황상제님의 궁전을 빼앗고자 하느냐? > < 나의 재간은 얼마든지 있소. 나는 72가지의 변화의 술법을 지녔으며, 만겁을 두고 불로장생할 수 있소. 근두운을 타면 십만팔천리를 단숨에 날 수도 있소 > < 그렇다면 그대가 나의 이 오른편 손바닥에서 벗어날 재간이 있다면, 옥황상제께 청을 드려 네 소원을 들어주마. 그러나 만일 내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면 그대는 하계로 돌아가서 몇 겁이든지 도를 닦은 후에 다시 재간을 겨루어 보아야 한다 >


오공은 내심 코웃음을 친다. ‘여래란 것도 기막히게 얼빠진 놈이로구나. 이 손선생이 한 번 근두운을 타면 십만팔천리를 날 수 있다. 그 따위 네 손바닥쯤이야 한 자 사방도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 정말 내기를 할 수 있소? > < 있구 말구! > < 그래 좋수다. 약속을 꼭 지켜야 하오! > < 아무렴! >

석가여래가 손바닥을 펼치니 꼭 연꽃 잎새만큼 커다래졌다. 오공은 깡충 뛰어서 여래의 손바닥 맨 가운데 우뚝 섰다. < 자아, 나는 간다! > 소리를 지르는 찰나, 한줄기 섬광이 번쩍하더니 오공의 형체는 간곳이 없다. 석가여래가 혜안을 똑바로 뜨고 자세히 바라보자니, 오공은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앞으로 앞으로 날아가고 있다.

한편 손오공은 한참을 날아가다 보니 다섯개의 시뻘건 기둥같은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이만큼 왔으니 이제 이곳에서 쉬었다가 그만 돌아가야 겠다. 가만있자, 무슨 표적을 남겨두자. 그래야 여래와 따지기가 좋을 것이다.’ 오공은 털 한가닥을 뽑아 먹을 듬뿍 머금은 붓으로 변하게 하여, 큰 기둥에다 글씨를 한 줄 썼다. “손오공이 이곳에 와서 한바탕 놀고 가도다.” 글씨를 다 쓰고나서 제일 첫째 기둥 뿌리에 오줌을 갈기고, 다시 근두운을 일으켜서 곧장 처음 있던 곳으로 돌아와 여래의 손바닥 위에 우뚝 섰다.

< 나는 손바닥을 벗어나 멀리 나갔다가 이제 돌아왔소. 이제 약속대로 옥황상제에게서 천궁을 양도시켜 주시오 > 여래가 호통을 친다. < 야, 이 오줌만 싸고 다니는 원숭이야! 너는 이제 나에게 붙잡힌 것이다. 네 놈은 내 손바닥에서 한 걸음도 빠져 나가지 못한 것이다 > < 부처님은 모르시오? 나는 하늘 끝 닿는 데까지 올라가서 다섯개의 기둥이 있기에 거기다 표적을 남기고 왔소. 믿지 못하면 나와 함께 가 봅시다 > < 갈 것까지 없다. 아래를 내려다 보거라 >

오공이 아래를 내려다 보니, 부처님의 손가락에 “손오공이 이곳에 와서 한바탕 놀고 가도다”라는 자필 글씨가 있고, 자기의 오줌이 배어있는 것이 아닌가. < 이런 일이? 이게 무슨 일이냐? 나는 분명 이 글씨를 하늘기둥에 써 놓고 왔는데, 어째서 부처님 손가락에 씌어 있다는 거냐? 믿을 수 없다. 거짓이다 > 오공이 급히 몸을 뛰쳐 나가려고 하자, 석가여래는 즉시 그대로 손바닥을 뒤집어 버린다. 그리곤 ‘다섯 손가락’으로 오행산이라고 하는 금 목 수 화 토 다섯개의 잇달은 산을 만들어, 그 밑에다 오공을 눌러 가두어 버렸다.>>

인용이 길어졌는데,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온 ‘뛰어 봤자 부처님 손바닥’이란 말의 연원이 되는 부분이겠다. 육당 최남선 선생이 ‘금강예찬(金剛禮讚)’이란 책에서 말한 “호수는 당초부터 시(詩)의 눈으로 대할 것이요, 설화(說話)의 눈으로 대할 것이요, 괴기안(怪奇眼)으로 대할 것이지, 역사적 사실 같은 것은 도외(度外)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란 권고를 호수가 아닌 이 산에도 적용하자면, 옛날 옛적에 석가여래가 천방지축 방약무인의 손오공을 가두었던, 다섯 손가락으로 만든 오행산이 바로 이 Kern County의 사막에 있는 ‘Five Fingers’가 아니었을까 상상해보게 되는 그런 산을 안내한다.

온통 큰 바위로 형성된 여러 가닥의 바위봉들이 마치 다섯 손가락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을 붙인 것인데, 건조한 사막의 밑바닥에서 거의 직선으로 편도 1마일을 가파르게 올라가는 독특한 산행이다. 짧지만 1,600’를 곧장 오르다 보면 마치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급속한 고도상승감을 느끼게 된다.


등산에는 대략 1시간반이 걸리고 하산에는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정상에서의 휴식을 포함하여 왕복산행에 약 3시간이 소요된다. 사막과 사막산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는 산행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늘이 전혀 없는 건조황량한 사막의 복판인 셈이니, 더운 날은 피해야 겠다. 등산로가 따로 없고, 최정상의 바위 위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두 손을 다 써야 하기에 등산의 난이도 측면에서 ‘Class 3’로 분류된다. 산행이 익숙하고 몸이 날렵한 분에게 합당한 산행이다. 물을 많이 지녀야 하고, 썬블락로션 등 햇볕을 차단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가는 길

LA 한인타운에서는 101번 Freeway로 북상하다가 170번으로, 다시 5번으로, 또 14번으로 바꿔타고 Mojave까지 간다. 여기까지 대략 95마일 쯤이 된다. Mojave에서 계속 14번 도로로 북상하여 42마일을 가면 왼쪽으로 SR178(Isabella-Walker Pass Road)이 교차하는 Freeman Junction이 나온다. 여기서 14번 도로를 계속 직진하여 5.3마일을 더 가면 왼쪽으로 비포장 도로가 있다. 이곳은 Homestead Cafe를 0.4마일쯤 지난 곳이다. 좌회전하여 주행거리계를 0으로 놓는다. 2.6마일이 되는 곳에는 Powers Well이 왼쪽에 있다. 직진한다. 2.7마일이 되는 곳에서 길이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간다. 3.2마일이 되는 곳에서 길이 다시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주차한다. LA한인타운에서 약 146마일이 되는 곳이다. 고도는 약 3,600’이다.

등산코스

동북쪽으로 솟아있는 여러 개의 암봉군이 우리의 목표인 Five Fingers이다. 마치 신을 경배하는 성소인양 하얗고 우뚝한 바위봉들이다. 거대한 공룡의 거친 등비늘로 상상되기도 한다.

맨 왼쪽에 있는 암봉에 정상점이 있다. 왼쪽에서 첫번째인 암봉과 두번째의 암봉 사이의 안부(Saddle)를 지향하여 가파른 비탈을 오른다. 등산로가 없으므로 대체적인 방향에 맞는 범위에서 발을 딛기에 편하고 또 오르기가 편한 곳을 따라 올라간다. 안부에 가까와지면 주변에 큰 바위들이 많아져 나아가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올라가고 있는 나의 등 뒤에 있는, 마치 고운 흙가루로 빚어 놓은듯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산자락의, 거뭇한 산이 Backus Peak(6,651’)이다.

마침내 안부에 올라서면 생각보다는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만한 편안한 공간이 있다. 북쪽으로 펼쳐있는 Mojave 사막의 너른 경개를 볼 수 있다.

왼쪽에 있는 정상봉에 오르기 위해서는 안부를 지나 북서쪽으로 잠시 돌아 내려간다. 정상봉 정점의 정북쪽에 다다르면, 왼쪽으로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긴 줄기가 있다. 이를 따라 정상으로 올라가자면, 큰 바위들의 사이에 곧 2개의 좁은 통로가 형성되어 있다. 왼쪽의 좁은 통로를 통하여 정상에 오를 수 있다. Sierra Club에서는 정상에 오르는 이 마지막 암벽구간에서는 반드시 전원 등산용 헬맷을 착용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정상에서의 전망은 참으로 아름답다. 특히 서쪽으로 Sierra Nevada의 남단인 Owens Peak(8,453’), Mt. Jenkins(7,921’), Morris Peak(7,215’)의 남성적인 골격미가 준수하고, Indian Wells Canyon의 다양한 색조와 매끈한 살결의 계곡미는 다분히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사방이 온통 드넓고 황량한 사막으로 둘러싸인 이 Five Fingers는, 과연 손오공의 유배지로서도 더할 나위없이 딱 좋은 곳이었겠다고 상상해 본다.

310-259-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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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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