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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19, 이렇게 앓았다”

2020-04-09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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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바꾼 코비드-19 시대를 맞아 공유해야 할 이야기들이 많다. 비슷비슷한 내용이라도 중요한 사안이라면 자꾸 정보를 나누고, 주의를 환기시켜야 이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경기 활성화와 생계지원 대책은 처한 상황과 필요에 따라 만사 제쳐놓고 붙들어야 한다. 무너지는 민생과 기업을 돕기 위해 나라에서 돈을 푸는데 이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

하지만 오늘은 뉴욕 한 한인가족의 코비드-19 투병기를 나누려고 한다. 지금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혹은 가족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나선 것은 감염을 막기 위해서인데, 막상 내가 감염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뉴욕 퀸즈에 사는 정인애(가명, 58)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가족이 이 전염병을 자가치료 끝에 이겨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소문 끝에 연락처를 알았다. 교육 공무원인 그녀는 60대 초인 남편, 직장인인 20대 아들과 함께 지난 3월19일부터 29일까지 열흘 남짓 코비드-19를 심하게 앓았다. 지금은 거의 완치됐으나 아직 자가격리 중이다.


그녀는 코비드-19 투병기를 정리해 교회에 전했다.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문의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날짜 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그의 체험담이 대륙을 가로질러 서부에까지 전해졌다.

그녀와 가족들은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은 적이 없다. 그들은 통계 밖의 사람들이다. 현재 뉴욕의 상황은 너무 급박해서 검사 자체를 받기 어렵고, 이 정도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것은 민폐라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아느냐고? 이들이 겪은 것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코비드-19 증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들 가족은 클로락스와 알코올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고 한다. 열이 최고 103도까지 오르내렸다. 흥건히 괴는 식은땀에다, 심한 근육통과 두통, 인후통, 설사 등이 반복됐다. 입맛도 잃었다.

증상은 이렇게 시작됐다. 새벽 3시, 아들이 잠자던 엄마를 깨웠다. 몸이 심하게 아프다는 거였다. 열이 많이 났다. COVID-19 검사를 위해 인근 ‘어전트 케어’에 갔다. 드라이브 스루에 차가 밀려 있었다. 온라인 예약을 안했다며 되돌려 보냈다. 약국에 들렀더니 체온계는 다 떨어졌다. 고객 당 한 박스라는 타이레놀만 사 들고 왔다. 엄마도 그날 오후부터 몸이 무겁고, 심한 두통에 귀도 먹먹해 졌다. 타이레놀도 듣지 않아 오후에 다른 ‘어전트 케어’를 갔으나 코로나 검사는 할 수 없었다. 가능하다는 독감 검사를 했더니 독감은 아니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뉴욕의 COVID-19 핫라인인 311, 의사에게 다 전화를 했다. 대답은 “숨쉬기 힘들고, 입술이 파래지면 병원 응급실로 가고 아니면 집에서 지켜보고 있으라”는 게 전부. 자가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족 모두 재택근무 중이어서 자가격리는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체온계와 음식 등은 지인들이 사서 집 앞에 두고 가면 나가서 들고 들어 왔다. 아들의 열은 99.7도에서 103도 사이를 오르내렸다. 두통과 근육통이 엄청났다. 속도 메슥거렸다. 컴퓨터 모니터를 켜면 눈부심 때문에 오래 보지 못했다. 모두 입맛을 잃었다. 남편은 근육만 뻐근하고 기침을 했다. 가장 경증이었다.

늘 아픈 것은 아니었다. 상태가 좀 나아지는 때도 있었다. 그때는 심한 감기인가 하며 잠깐 안심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몸이 조여 오는 것 같고, 손가락 끝까지 저릿해지면서 심한 근육통이 밀려 왔다. 시간 맞춰 타이레놀을 복용하면서, 종일 침대에 누워 자는 수밖에 없었다. 좀 나아진 것 같아 화장실 청소를 하려고 클로락스 통을 여는데 이상하게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온 식구가 다 그랬다. 다시 알코올에 코를 대 봤다.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아하! 우리가 코로나를 앓는 구나 재확인하게 됐다.


아들이 가장 먼저 일어났다. 열흘쯤 후 식구들이 모두 정상을 회복했다. 하지만 아직 기침을 하면 가슴에 콕 찌르는 통증이 있기도 하고, 근육이 뻐근하다. 인스타그램으로 본 영국 텔레그래프 지에 따르면 나은 후에도 2주 정도, 최대 37일까지 코로나바이러스가 몸에 잔류할 수 있다고 해서 그때까지는 자가격리를 계속할 생각이다.

이들 가족뿐 아니라 80% 정도의 COVID-19 감염은 이렇게 지나간다. 그녀의 말대로 미디어에 보도되는 것은 중증, 극한 상황의 이야기들이다. 치료약이 없으니 타이레놀 등으로 증상을 완화시키면서 자가 면역으로 이겨나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증상은 사람마다 차이가 크다. 처음부터 냄새를 못 맡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주위에 자신의 가족처럼 아픈 사람이 여럿이라고 한다. 다들 감기라며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중 한 사람은 의료요원이어서 우선적으로 검사를 받았더니 COVID-19 양성. 이들 가족처럼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실제 감염자가 훨씬 더 많고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유다. 가능하면 더 철저하게 외출을 자제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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