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 스포츠팬으로서 요즘 가장 견디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스포츠가 사라진 주말이다. 매주 주말 각종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스포츠가 멈춰서면서 가뜩이나 무료한 일상이 더욱 심심해졌다.
이 맘 때면 야구팬들은 메이저리그 개막으로, 또 농구 팬들은 플레이오프를 향해 치닫는 NBA 팀들 간의 치열한 순위경쟁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개막은 미뤄지고 NBA 시즌은 사실상 끝났다.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매주 토요일 이른 아침 눈을 떴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유럽의 축구리그들 또한 무기한 연기됐기 때문이다. 런던을 방문한 지난 2월 중순 토트넘과 첼시 경기를 보기 위해 어렵사리 표를 구해 직접 경기장을 찾기까지 한 축구팬으로서 주말의 빼놓을 수 없는 루틴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3월의 광란’ 취소였다. 매년 3월 68개 대학 농구팀이 벌이는 토너먼트인 ‘3월의 광란’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감동적 스토리들이 넘쳐나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선사해왔다. 약자가 강자를 눌렀을 때는 모두가 짜릿해하고 패자의 고뇌에는 함께 안타까워했다. 가장 큰 3월 스포츠 이벤트가 코로나19로 취소되자 농구팬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통해 프로 팀들에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를 갖길 기대했던 선수들의 상심에는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토요일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다 보면 스포츠 경기들이 눈에 띈다. 어김없이 옛날 경기 재방송들이다. 색 바랜 화면의 과거 대학농구 경기든가 지난 골프 토너먼트들이다. 이미 광고를 팔고 경기 중계스케줄을 잡아놓았던 TV 방송사들로서는 여간 난감한 상황이 아니다. 스포츠 경기들이 취소되면서 ESPN이나 폭스 스포츠, NBCSN 등 스포츠 채널들은 편성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 세계 스포츠 시장 규모는 연간 수조 달러에 달한다. 거의 모든 스포츠가 동시에 멈춰서면서 그로 인한 경제적 여파는 엄청나다. 최근 수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해온 스포츠 도박시장의 타격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일상에서 스포츠가 사라지면서 스포츠팬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우울감과 상실감은 경제적 타격과는 또 다른 문제다. 한 축구팬은 “풍선의 공기가 빠지듯 인생을 뜨겁게 달궜던 열정 하나가 사라졌다”며 축구 없는 삶의 고통을 호소한다. 스포츠를 통해 자기 안에 농축된 감정들을 풀어낸 후 다시 일상의 세계로 돌아가곤 했던 스포츠팬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푸념이다.
스포츠가 사라짐으로써 사람들이 겪는 우울감은 소비심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한 경제학자는 선수들에 대해 철저한 감염검사를 거친 후 소수의 중계요원들만 참여한 가운데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자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별로 현실성 없는 제안이지만 그만큼 많은 이들의 삶에서 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어떤 것을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되면 그것을 대신할 대체재를 찾게 된다.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재택생활이 확산되면서 실내용 자전거와 탁구대처럼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스포츠 용품들의 주문이 폭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제에 집안에서 운동하고 땀 흘리는 것을 일상으로 만든다면 코로나19가 선사한 예기치 못한 선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다양한 스포츠 경기들이 선사해주는 만큼의 짜릿함과 카타르시스를 맛보기는 힘들다. 경기장에 관중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며 스포츠가 돌아오는 날, 그것은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예전의 소중한 일상이 우리 곁으로 다시 찾아왔음을 의미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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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