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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를 하며

2020-04-06 (월) 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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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째 재택근무 중이다. 미 전국에서, 미국 인구의 2/3 이상이 생사와 관련된 필수적인 일을 제외한 외출을 금하라는 명령을 주지사, 시장들로부터 받았다. 업무상 출장으로 연중 4개월 이상을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내는 게 일상이었는데, 올해 초 한국을 다녀온 후 줄곧 집에만 있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재택근무가 좋은 점도 있지만, 맺고 끊음의 경계가 모호해져 정신적으로는 일이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다른 바뀐 점은 평소보다 뉴스를 더 많이 본다는 것이다. 뉴스의 90% 이상은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평소 걱정 없이 사는 편인데, 온 세상이 바이러스 이야기뿐이니 나도 하루 일과가 끝나 가면 괜히 미열이 있는 게 아닐까? 이마를 만져보고, 목이 간지럽고 헛기침을 하면 뭐가 잘못된 게 아닐까 과민 반응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어떠한 이유가 되었건 불평할 입장이 아니다.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알기 위해 병원에서 검사순서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계속 챙겨줘야 할 어린자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바이러스에 감염될지 몰라 걱정하며 출퇴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 2주간 미국에서 서울시 인구와 맞먹는 1,000만 명이 실업보험 신청을 했다고 한다. 이번 주 팀 회의에서는 캄보디아 출신 직장동료가 자신의 남편도 지난주에 일이 없어져 실직했다고 했다. 동료의 남편은 아내의 국제기구 비자로 미국에서 일하다 보니 이번 경기부양 특별법을 통한 혜택도 받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번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을지 적절한 말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이 사태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어 더 어렵다.

한국 언론에도 미국 상황이 많이 보도가 되는지,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평소보다 더 자주 연락이 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감사를 표하면서도, 이런 전대미문의 사태에 나는 너무 평온하게 있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한국에서 감염사태를 키워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신천지와 같은 이단 종교집단들은 이러한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면서 절대자의 심판의 시간이 왔으니 죄 값으로 더 많은 헌금을 바쳐야 한다고 거짓을 더 열심히 설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터무니없는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전 인류가 초래한 잘못에 대한 심판을 다 같이 받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미국인의 4분의 3 가까운 사람들은 한달에 500달러 이상 되는 추가적인 지출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한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그리고 주요 대응 기관들은 서로 다른 소리를 하며 엇박자를 내면서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미국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 길도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당장 다음 달 렌트비가 없어 거리로 쫓겨나게 생겼다면, 숨을 쉴 수가 없어 병원에서 호흡기에 의존해야 하는데 산소호흡기가 부족한 상황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이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회적 거리두기와 기도밖에 없는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이 다 지나간 후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잊지 않아야 하겠다.

<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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