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옆 네일 가게도 문을 닫았고 그 옆의 컴퓨터학원과 미용실 그리고 피트니스 센터도 모두 문을 닫았다. 우리 가게가 있는 몰에서 문을 연 곳은 내가 운영하는 세탁소와 맨 끝에 있는 피자집 두 곳뿐이다.
세탁소는 불요불급 업종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아 영업은 계속하고 있으나 하루 종일 기다려도 손님 서너명 보기가 어렵다. 이 난리 통에 사람들이 먹을 것과 생필품 사재기에 여념이 없어 옷을 세탁하고 다려입는 것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니 드라이클리닝을 할 옷도 별로 없을 것이다.
어쩌다 세탁소를 찾는 손님도 가게에 들어서면 카운터 위에 옷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뒷걸음 쳐서 될 수 있는 대로 주인과의 거리를 멀리하려고 한다. 나 역시 손님에게 영수증을 줄 때는 한껏 팔을 뻗어 손님과의 거리를 최대한 유지하려 한다. 바이러스 옮을까봐 손님과 주인이 서로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손님이 가게를 나가자마자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는 것은 물론이다. 어쩌다 손님이 재채기를 하거나 콧물을 흘리면 잔뜩 긴장을 하게 된다. 시중에서 마스크를 살 수가 없어 두꺼운 면을 두 겹으로 접은 다음 재봉질하여 마스크로 만들어 쓰고 있다. 면 마스크 안쪽에 포켓을 만들고 그 안에 커피 필터 두 장을 집어넣어 마스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면 커버는 매일 빨고 커피 필터도 매일 새것으로 바꿔 끼운다.
미국은 바이러스 감염여부 검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3월말 현재 이탈리아와 중국을 제치고 바이러스 감염자 수 1위의 불명예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인구밀도가 높은 뉴욕, 뉴저지가 감염자가 가장 많다.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들불처럼 무섭게 번지는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불릿 트레인(총알기차)’에 비유했다. 뉴저지 보건국장 주디스 퍼시칠리는 이대로 가면 뉴저지 주민 100%가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다는 불길한 경고를 하였다.
미주 한인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 한국의 바이러스 창궐을 걱정하며 매일같이 한국에 있는 친척들에게 안부를 물었으나 이제 거꾸로 한국의 친지들이 매일같이 카톡이나 전화로 미국 한인들의 안부를 묻고 있다.
지난 1월부터 미국의 정보기관과 의료전문가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여러 차례 경고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독감의 일종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했다. 또한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는 전문가들과 언론을 Hoax(유언비어 선동)이라며 몰아붙였고 기자회견장에서 정부의 뒤늦은 대책을 지적하는 기자에게 ‘당신은 형편없는 기자’라며 면박을 주었다. 또한 ‘차이니즈 바이러스’, ‘쿵 플루(Kung Flu)’라며 아시아인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아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도처에서 수모를 당하고 있다. 불길은 초기에 진화해야 잡기가 쉬운데 미국정부는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하는 동안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여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것 같다.
산에 들에 꽃은 피었으나 세상은 황량하기만 하다. 이웃의 네일 가게, 컴퓨터학원, 피트니스 센터가 다시 문을 열어 활기를 띠고 피자가게에서도 즐겁게 식사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다시 듣게 될 날은 언제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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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호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