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수감사 주일예배 때 필자는 성도님들에게 한 해를 돌아보면서 감사한 일 10가지를 적어 보라고 했다. 5분의 시간을 주고 10가지 감사의 일을 적으라고 하였는데, 10가지를 다채우시는 분들이 계시는 반면, 고민 고민하면서 10가지를 적지 못하는 분들도 계셨다.
10가지 감사의 일을 적으시는 분들과 10가지를 적지 못하시는 분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10가지 감사의 일을 빨리 적으신 분들은 한 해 동안 좋은 일이 많았고, 10가지를 적지 못하신 분들은 나쁜 일만 있었기 때문일까? 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왜 누구는 같은 한 해를 살면서 감사의 일이 많고, 누구는 감사의 일이 적은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하얀 색 도화지 정가운데 검은 점을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엇이 보이냐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검은 점이 보인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소수의 몇몇 사람들은 하얀 여백이 보인다고대답을 한다. 도화지의 대부분은 하얀 색 여백으로 채워져 있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여백이 아닌 가운데 찍힌 작은 검은 점을 본다 감사도 마찬가지다. 목회를 하면서 여러 성도님들을 만나보면 늘 감사하는 삶을 사시는 분들은 감사한 일들이 많이 생기고,? 늘 불평하는 분들은 안좋은 일들이 자주 생기는 것을 보게 된다.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늘 감사하시는 분들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얀 여백을 보시는 분들이고, 늘 불평하시는 분들은 인생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검은 점을 보시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감명깊게 읽은 책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17세기 프랑스 수도사였던 로렌스 형제가 쓴 책이다. 로렌스 형제는 수도사가 되기 전 전쟁에서 다리를 다쳐 한쪽 다리에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26살의 나이에 프랑스 파리카르멜 수도회에 평수도사로 입회를 하게 된다. 그가 주로 한 일은 주방일, 수도사들의 신발을 수선하는 일 등 수도원에서 허드렛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늘 감사의 삶을 살았고, 그래서 주변 동료 수도사들의 존경을 받았다. 로렌스 형제가 늘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는 그 일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늘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삶에서 꼭 큰 일만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프라이팬의 작은 달걀 하나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뒤집는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닥에서 지푸라기 하나만 주워 올 릴 수 있어도 만족할 것이다. 로렌스 형제는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생의 여백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이라 생각한다. 검은 점이 찍히는 곳에서만 하나님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일상이 반복되는 인생의 여백에서 하나님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그는 늘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 그것은 고흐나 모네와 같은 인상주의 시대 그림들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화폭 가득 채워진 색감의 향연이 큰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동양화에는 별 관심을 갖지 못하였는데 동양화를 전공하신 분의 설명을 듣고 필자가 왜 동양화에는 관심을 갖지 못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서양화의 관점으로 동양화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동양화는 서양화와 달리 화선지에 검은 묵으로 그릴 때 화선지의 하얀 여백을 두는 반면 서양화는 하얀 여백을 남겨 두지 않는다. 화선지의 흰 여백을 볼 때 동양화의 기품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삶도 인생의 여백을 보게 될 때 감사한 일로 채워지는 인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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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재 나성북부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