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적의 컴백

2020-03-10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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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미 대통령 선거는 해보나마나 한 것 같이 보였다. 1991년 걸프전이 미군 사망자 거의 없이 기적적인 승리로 끝나자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 부시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의 지지율이 90%가 넘어서자 당시 민주당의 유력 후보였던 마리오 쿠오모는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일곱 난쟁이’라 불린 군소주자만 난립했다.

그중에서도 남부의 작은 주 아칸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은 무명 정치인이었다. 1992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3등을 한데 이어 제니퍼 플라워스와의 성추문이 터지자 그의 정치 인생은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빌과 그의 아내 힐러리는 CBS의 ‘60분’에 출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자 사람들은 참신하고 스마트한 이들 부부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 뒤 열린 뉴햄프셔 예선에서 빌은 예상을 깨고 2등을 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플로리다와 텍사스에서 이겨 민주당 후보 지명을 따내고 본선에서도 승리했다. 이때부터 빌 클린턴에 자타가 공인하는 ‘컴백 키드’라는 별명이 붙게 됐다.

30년 전 이변을 능가하는 기적이 이번 대선에서 일어났다. 올 초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4등을 한데 이어 뉴햄프셔에서 5등을 하자 조 바이든의 정치 생명은 끝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버니 샌더스가 네바다에서 47% 대 20%으로 바이든을 누르자 그가 설 곳은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민주당 진보파는 사실상 샌더스로 단일 대오를 이루고 있는데 민주당 온건파 표는 바이든과 피트 부티지지, 에이미 클로버샤, 마이크 블룸버그 등 여러 갈래로 흩어질 형편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그 때부터 일어났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예선이 있기 사흘 전 민주당 흑인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 내외에서 존경을 받고 있던 제임스 클라이번이 바이든 지지를 공식 천명한 것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민주당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흑인들은 그에게 몰표를 주는 것으로 답했으며 그 결과 바이든은 48%로 20%의 샌더스를 눌렀다. 그의 압승 소식이 전해지면서 부티지지와 클로버샤는 후보직 사퇴를 발표했으며 이들 표가 바이든에게 몰리면서 3일 열린 수퍼 화요일 선거에서 바이든은 14개 주 중 10개 주에서 이기는 기염을 토했다.

수퍼 화요일 승리로 민주당 경선은 사실상 바이든과 샌더스의 양자 대결로 굳어졌다. 블룸버그가 사퇴했고 마지막 남은 주자인 털시 개버드는 당선 가능성이 제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얻은 대의원 수는 바이든 664대 샌더스 573로 근소하지만 샌더스가 이 차이를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첫째, 가주 등 서부 지역에서 샌더스가 얻은 표 중 상당수는 조기 투표로 부티지지와 클로버샤 등이 사퇴하기 전 나온 표다. 이들 후보로 표가 분산되지 않았더라면 바이든이 받은 표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둘째, 앞으로 선거가 남은 남부 지역은 바이든 지지 성향이 강한 흑인표는 많은 반면 샌더스를 좋아하는 라티노는 비교적 적다. 거기다 샌더스의 카스트로 지지 발언은 보수색이 짙은 플로리다 라티노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본선 주요 접전지인 이곳에서 샌더스의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지금까지 풀뿌리 모금 운동으로 튼튼한 후원 세력을 갖고 있던 샌더스에서 비해 곳간이 바닥난 바이든은 자금력에서 열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블룸버그가 사퇴하면서 바이든을 밀겠다고 선언한 순간 그 걱정은 사라졌다. 또 민주당 경선이 양강 구도로 재편되면서 누구를 밀까 고민하던 민주당 큰 손들이 바이든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 동안 샌더스는 자신이야말로 그 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청년과 소수계 등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여 11월 본선에서 트럼프를 꺾을 수 있는 후보라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난 주 열린 수퍼 화요일 결과를 보면 자기 출신지인 버몬트에서조차 그가 얻은 표 수는 2016년에 비해 줄어들었다. 새 투표자가 늘어나기는커녕 그의 독선적 주장에 많은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여러 온건파 후보들이 순식간에 단일 대오를 형성한 것은 그의 대통령 후보 지명은 중도파 표심의 이반으로 대선은 물론 의회 및 지방 선거에서의 참패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올 선거 결과는 두고 봐야하겠지만 지난 2주간의 극적인 반전 드라마는 미 정치사에 두고두고 화제로 남을 것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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