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닮은 꼴 선거

2020-02-25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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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공직을 맡아본 적이 없고 사생활이 문란하며 파산을 밥 먹듯 해가며 부채를 탕감받아 돈을 챙긴 인물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쟁에는 당시로서는 사상 최대인 17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진 상태였다.

그러나 막상 2016년 예선이 시작되자 상황은 예상 밖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세계화와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고 중하류 이하로 신분이 추락한 저소득 저학력 백인들은 자신들 불행이 “멕시코 강간범” 때문이라는 트럼프의 억지 주장에 열광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공화당 중에서도 소수였지만 나머지 표들은 여러 후보에 분산됐다. 그를 우습게보던 타 후보들은 뒤늦게 연합전선을 결성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는 그해 5월 인디애나에서 압승을 거두며 공화당 대선후보 자리를 따냈다.


4년 전 일어났던 일이 올해 되풀이 되려하고 있다. 이번에는 민주당에서다. 사상최대인 29명이 출마한 이번 경선에서 올 초만도 민주당 대선후보 1순위는 조 바이든이었다. 미국인 대다수가 트럼프를 꺾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그를 꼽았다.

그러나 1월 열린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죽을 쑤면서 그의 인기는 급락하고 근소한 차이로 2등을 한 버니 샌더스가 급부상했다. 이어 뉴햄프셔에서 열린 예선에서 1등을 하면서 샌더스의 전국 지지도는 바이든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으며 지난 주말 열린 네바다 코커스에서 46.8%라는 압도적 표로 1등을 하면서 민주당 대세로 떠올랐다.

샌더스는 민주당 안에서 극렬 지지자를 갖고 있지만 이는 전체로 보면 소수다. 그러나 수적으로 더 많은 당내 온건파 표는 바이든과 피트 부티지지, 에이미 클로버샤 등이 나눠 갖고 있다. 3월 초 있을 수퍼 화요일에 마이클 블룸버그까지 가세하면 이 표는 더 나뉠 것이다. 그렇게 되면 7월 위스콘신에서 있을 전당대회까지 샌더스의 독주는 막을 수 없게 된다.

1차 투표에서 샌더스가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당 중진으로 구성된 수퍼 대의원이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게 되지만 최다 득표를 한 샌더스를 놔두고 다른 후보를 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빠른 시일 내 민주당 온건파가 단일후보를 내지 않으면 민주당 대선후보는 샌더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본선에서 샌더스와 트럼프가 붙으면 어떻게 될까. 트럼프가 우세하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샌더스는 극성팬을 갖고 있지만 이들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본선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중도층인데 샌더스는 이들에게 매력 없는 후보다.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들은 흑인이나 여성은 상관없지만 사회주의자를 대통령으로 뽑는 것은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내 좌파의 눈치를 봐야하는 당 후보지명 토론에서는 묻혔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본선에서는 과거 소련과 쿠바를 옹호했던 샌더스 발언이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샌더스는 지난 주말 CBS 시사프로 ‘60분’에 나와서도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한 후 한 일이 문맹퇴치였다며 카스트로가 했다고 모두 잘못한 것은 아니라며 그를 변호했다. 카스트로가 종신 집권을 하며 수많은 국민들을 투옥하고 처형한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거기다 그는 대다수 미국인들이 원하지 않는 개인 건강보험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있으며 대학 등록금 무료, 학자금 융자 탕감, 밀입국자 건강보험 신설 등 엄청난 재원이 들어가면서 논란의 소지가 많은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돈을 마련할 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와 샌더스는 극과 극인 것 같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트럼프가 세금보고서를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 샌더스는 건강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해놓고 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의 모든 문제를 “멕시코 밀입국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면 샌더스는 이를 “억만장자와 백만장자” 때문으로 몰아 부치고 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한 것도 이들 지지자의 공통점이다.

이들이 11월 본선에서 맞붙게 된다면 이는 양쪽으로 갈라진 미국의 상징이 될 것이다. 미국과 미국인들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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