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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의 ‘돌풍’과 블룸버그의 ‘돈’

2020-02-06 (목)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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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 코커스 직전까지 민주당 대선 경선의 관전 포인트는 대충 세 가지였다 : 조 바이든의 대세론은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혼잡한 민주 필드는 초기 경선을 통해 얼마나 정리될 수 있을까. 3위까지 뛰어오른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의 머니파워는 어느 정도일까.

아이오와가 금년에도 ‘군소 주자들을 걸러내 필드를 정리하고 선두주자의 윤곽을 잡아주는 전통적 역할’을 해냈더라면 첫 두 가지 궁금증은 다소 풀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디어들이 ‘초유의 대참사’라고 아우성치는 기술상 문제에 의한 개표 지연으로 혼란이 빚어지면서 초만원 필드는 전혀 걸러지지 않은 채 선두주자 윤곽은 더욱 불확실해졌다.

하루를 넘긴 늑장 발표이긴 했지만 2월3일에 치러진 2020년 대선 첫 경선의 승자와 패자는 4일 오후 첫 중간집계를 통해 드러났다.


38세 젊은 동성애자 피트 부티지지가 깜짝 1위로 ‘아이오와 이변’의 주인공이 되었고, 사실상의 공동 1위인 최다득표자 버니 샌더스가 4년 전 ‘버니 돌풍’의 재연을 예고했으며, 무난한 2위를 기대했던 바이든의 4위 추락이라는 충격적 참패가 전해졌다. 가시적 승자와 패자 외에 ‘실질적 승자’도 드러났다. 아이오와 난국의 최대수혜자로 모두가 주목하는 블룸버그다.

혼란에 빠졌어도 언제나 그랬듯이 아이오와의 결과는 아이오와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직 최종결과로 연결 짓기는 힘들지만 전체 경선의 판세를 바꾸는 계기는 될 수 있다. ‘포스트 아이오와’의 관전 포인트 역시 아이오와의 승자와 패자들에게 맞춰져 있다. 14개주 경선이 치러지는 3월3일의 수퍼 화요일까지 앞으로 약 한 달은 우선 네 가지를 지켜볼만 하다.

첫째, 바이든은 만회할 수 있을까. 코커스 당일 아침 바이든의 앞날을 “아이오와에서 1위를 차지하면 경선승리의 탄탄대로에 오르게 될 것이지만 4위로 떨어지면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고 진단했던 NBC뉴스는 다음날 이렇게 덧붙였다 : “그런데 결과발표 지연이라는 재앙이 바이든에게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는 총알을 피한 것이다.”

바이든의 대세론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출마의 기반인 ‘당선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11일 뉴햄프셔에서 최소 2위를 차지한 후 지지율 높은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한다면 휘청거린 대세론을 다잡아 수퍼 화요일로의 진군이 가능해진다.

뉴햄프셔에 이어 네바다에서마저 패한다면 바이든의 가장 든든한 방화벽인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흑인표밭이 계속 그를 전폭 지지해 줄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게다가 바이든은 선두권 주자들 중 자금력이 가장 약하다. 모아놓은 선거자금도 거의 바닥난 상태인데 수퍼 화요일부터는 중도파 주자 블룸버그의 ‘돈’과도 맞서야 한다.

둘째, 바이든을 제치고 중도 진보의 대표주자가 되기 원하는 부티지지는 소수계 지지층을 확대해 뒷심을 발휘할 수 있을까. 사실 발표 지연의 최대 피해자는 부티지지라 할 수 있다. 아이오와 승자에게 쏟아지는 뉴스 조명과 모멘텀 확보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당선된다면 미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기록될 그의 최고경력은 인구규모로 미국에서 306번째인 소도시의 시장이다. 그래서 ‘경험부족’이 늘 약점으로 부각되지만 강력한 참모진과 현실적 감각을 갖춘 그의 역량에 대한 높은 평가도 적지 않다. 민주당은 케네디, 클린턴, 오바마 등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후보를 지명했을 때 본선에서 승리했다는 분석도 있다.


아이오와 승리 후 표밭은 그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고 그의 승세는 뉴햄프셔에서 좀 부진해도 금방 꺾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2월말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3위 아래로 떨어진다면 다시 중위권으로 주저앉을 것이라고 폴리티코는 예상한다.

사실 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셋째 ‘버니 돌풍’과 넷째 블룸버그 ‘돈의 힘’이다.

샌더스의 ‘버니 돌풍’은 되살아날 수 있을까. USA투데이는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로 지명된다면 “트럼프는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양자택일 싸움으로 몰아갈 것이며 2018년 민주당에게 표를 주었던 고학력 교외거주자들이 그의 극좌정책에 등을 돌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당 주류가 그를 ‘위험부담 높은 후보’로 경계하며 본선경쟁력을 문제 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버니 돌풍은 이미 다시 불기 시작했다. 충성스런 풀뿌리 지지자들의 열광을 동력으로 뉴햄프셔에서 1위를 차지하고 승세를 몰아 네바다 정복에 이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선전한 후 그 모멘텀으로 수퍼 화요일에 압승을 거둔다면 버니 돌풍을 막기는 힘들어질 것이다.

바이든을 밀어내는 샌더스의 승리를 ‘당분간은’ 응원할 사람이 블룸버그다. 그래서 생긴 중도의 공백을 자신이 메우기 원하는 것이다. 지각 주자 블룸버그를 단기간에 3위에 안착시킨 돈의 힘은 그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까.

버니 돌풍이 거세지고 블룸버그가 돈에 더해 리더의 역량까지 보여준다면 트럼프 낙선이 절대 명제인 민주표밭의 억만장자를 꺼려하는 시각도 달라질 수 있다.

여름의 전당대회를 거쳐 늦가을의 투표까지 앞으로 9개월 내내 답답한 안개 속을 헤맬 대선은 이제 겨우 첫 관문을 넘어섰다. 그 길고 험난한 여정에서 갈고 닦이며 얼마나 단단해진 리더가 태어날지…미지근했던 민주당 경선이 열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다.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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