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의 탄핵심판에 대해 헌법에 명시된 것은 세 가지뿐이다 : 상원의원들은 반드시 선서해야 한다. 탄핵 가결은 전체 상원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탄핵심판은 연방대법원장이 주재한다.
재판 형식의 탄핵심판을 어떤 절차로 진행할 것인가는 상원 스스로가 정해야 한다. 다수당의 재량권이 상당히 포괄적이라는 뜻이다.
연방대법원장을 재판장으로 ‘검사역’을 맡은 민주당 하원의 탄핵소추위원들과 컬러풀한 캐스팅의 트럼프 변호팀, 그리고 100명 상원의원 ‘배심원단’ 등이 완비된 무대에서 21일 미 역사상 세 번째의 탄핵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앞으로 한동안 지켜보게 될 도널드 J. 트럼프 대통령 ‘탄핵 법정드라마’의 개막이다.
우크라이나 정부에게 정적 조 바이든 부자의 뒷조사를 압박하며 군사원조를 유보시킨 대통령의 권력남용과 이에 대한 하원의 조사를 막으려한 의회방해, 두 가지 항목에 근거한 하원 탄핵안에 대한 심리가 진행될 것이다.
재판 첫날, 자정을 넘겨가며 공방전을 펼친 진행방식 규정은 다수당인 공화당의 일방적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공화대표 미치 매코널의 결의안에 대한 민주당의 11개 수정안은 모조리 부결되었고 모든 절차는 공화당의 뜻대로 결정되었다.
상원에서의 탄핵안 부결은 거의 확실하지만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핵심 쟁점은 새로운 증인 채택 여부다.
심판 초기에 새로운 증인과 증거 서류들을 소환하려던 민주당의 시도는 완전 무산되었지만 가능성은 남아있다. 각각 사흘에 걸친 검사와 변호 측의 입장 개진과 배심원단의 서면질의 및 응답까지 끝난 후인 다음 주 중반 넘어 증인소환 여부를 다시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월4일 트럼프의 국정연설 전에 탄핵심판을 끝내기 위해 속전속결을 강행하려는 공화당 지도부는 ‘상원의 임무가 아니다’라며 새로운 증인 채택을 반대한다. 지난주 매코널은 상원 본회의에서도 “역사나 헌법, 어디에도 상원이 빈칸을 채워야한다는 주장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하원이 빈칸을 남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주요 증인들의 증언과 증거서류 제출을 차단한 백악관의 의사진행 방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고 USA투데이는 지적한다.
지난 12월 18일 하원의 탄핵안 가결 이후 추가 증거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 행정부의 군사원조 유보가 위법이라고 밝힌 회계감사원의 보고서가 나왔고, 원조 유보를 은폐하려는 백악관 시도에 대한 행정부 이메일을 공공청렴센터가 공개했는가하면, 러시아가 헌터 바이든을 고용했던 우크라이나 개스회사를 해킹했다는 사이버안보 회사의 발표도 있었다.
증인 채택 문제는 특히 ‘폭탄 증언’에 대한 기대로 집중 관심을 받는 존 볼턴 전 국가안보 보좌관이 1월 초 상원의 소환을 받으면 증언하겠다고 밝힌 후 더욱 핫이슈가 되었다.
증인소환 여부는 표결에 부쳐질 경우 단순 과반수인 51명만 찬성하면 통과된다. 53명의 공화 상원의원 중 4명만 민주당 편에 합류한다면 가능하다. 그럴 경우, 탄핵심판의 최종 결과와는 상관없이, 탄핵의 근거인 우크라이나 군사원조 유보 전모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볼턴과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대행의 ‘생생한’ 증언을 전 국민이 들을 수 있게 된다.
“볼턴의 증언을 듣기 원한다”는 미트 롬니를 비롯해 “난 1999년 클린턴 탄핵심판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증인소환 발의안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힌 수전 콜린스, 오바마케어 폐지 표결과 브렛 캐버너 대법관 지명 인준에서 당론을 거슬렀던 온건파 리사 머코우스키 등 3명이 일단 가장 합류 가능성 높은 공화표로 꼽힌다.
그러나 결정적인 4번째 표 찾기는 쉽지가 않다. 은퇴를 결정해 트럼프 핵심 표밭의 위협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 라마르 알렉산더, 재선 위기에 처한 코리 가드너와 마사 맥샐리, 조니 언스트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의중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부결 가능성도 다분하고 채택된다 해도 볼턴이나 멀베이니의 증언 실현이나 증언 효과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볼턴 증언을 대통령의 행정특권으로 막겠다고 경고했고 백악관이 법원에 증언금지 가처분신청을 낼 수도 있다. 이미 백악관과 공화당은 볼턴 증언 저지를 위한 물밑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공화당이 조 바이든 부자를 소환할 수도 있다.
그래도 ‘증언 없는 재판’ 보다는 훨씬 바람직하다. 지난주 상원의원들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하겠다”는 선서를 얼마나 진지한 각오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건전한 시각에 의한 공정한 재판이란 증거와 증인을 통해 규명되는 진실의 추구 과정이기 때문이다.
여론의 62%는 공정재판 가능성에 희망을 표시했고 69%는 새로운 증인 채택을 지지한다. 결과가 당파적으로 이미 정해졌다 해도 증인 채택을 함으로써 그 절차까지 조작된 것은 아니라는 위안을 줄 수도 있고, 무너져가고 있는 ‘세계 최고의 심의기관’이라는 상원의 옛 명성을 언젠가 재건할 때 작은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막 시작된 트럼프 탄핵 법정드라마는 눈앞의 승자와 패자를 가르며 길어도 몇 주 내에 막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11월 대선이 끝난 후에야 확실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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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