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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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핸드폰

2020-01-11 (토) 안세라(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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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못차리고 산다 생각했는데 드디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산 지 몇 달도 되지 않은 최신 핸드폰을 어이없게 고장내고야 말았다. 둘째아이의 침구를 정리하다가 침구와 함께 핸드폰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 말았다. 퉁퉁 소리가 나는 세탁기가 이상해서 뚜껑을 열었을 때 핸드폰은 이미 물을 듬뿍 흡수하고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남편에게 얼른 뛰어가서 물었더니 일단 전원을 켜지 말고, 쌀통에 넣어 충분히 건조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핸드폰 없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핸드폰 없는 첫날, 뭔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딱히 기다리는 연락도 없었고 꼭 해야 하는 연락이 있는 것도 아니였는데, 손이 허전하고 불안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핸드폰이 없는 둘째날, 날이 바뀌었는데도 카메라에 보이는 습기는 없어지지 않았다. 불안함보다는 이제는 불편함이 더 커졌다. 늘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날씨를 체크하고, 구글 맵을 이용했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 어찌나 불편하던지.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나고 연말연시가 되었다. 지인들과는 모든 연락을 핸드폰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연락을 하던 지라, 새해 인사도 제때 챙기지 못했다. 흔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는 하나도 가입하지 않고 있으니 핸드폰에 대한 의존도가 다른 누구보다도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일이 지나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핸드폰 카메라의 습기는 빠지지 않았고, 결국 전원을 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예상대로 핸드폰 보험을 사용해서 비교적 저렴하게 새 핸드폰을 바로 살 수가 있었다.

약 일주일만에 새로 손에 쥐게 된 핸드폰. 조금 과장해서 말을 하자면 뭔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였다. 마치 핸드폰을 처음 가져본 사람처럼 이것저것을 만지고 설정하며, 새삼 지인들에게도 얼마나 연락을 해댔었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가지고 놀았다. 핸드폰 좀 하지 말라며 남편에게 잔소리를 해대던 내가 머쓱해지던 순간이였다. 소셜네트워크가 없어도, 핸드폰 따위 없어도 인간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다 큰소리치던 내 자신이 민망해지던 순간이였다. 단 한가지 좋았던 것은, 핸드폰이 없어 거래를 하지 못했던 주식이 모처럼 많이 올라있었던 것. 우습게도 그것, 단 한가지였다.

<안세라(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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