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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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여수를 다녀오다

2019-12-18 (수) 이현희(기모치 소셜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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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저희 부부는 한국에 갔을 때 시아주버님 내외분과 함께 여행을 갔습니다. 서울에서 여수까지 차를 타고, 여수에서 금오도까지는 차를 싣고 배를 타고 갔습니다. ‘비랑길’이라고 부르는 길을 따라 바다를 보며 섬을 돌아가며 걷고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다음 날 여수로 나와 나환자들 병원인 애양원을 방문했습니다. 그 교회에서 섬기셨던 손양원 목사님의 기념관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손목사님과 두 아들의 묘가 있는데 두 아들은 1948년 여순사건 때 예수 믿는다고 반란군에게 함께 처형당했고 목사님은 6.25전쟁이 난1950년 9월에 공산당에게 처형당하셨습니다. 손목사님은 두 아들을 처형한 반란군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으셨습니다. 기념관 내의 사진들은 손목사님이 애양원의 나환자들을 얼마나 사랑으로 돌보셨는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시아주버님 내외분과 저희는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감동을 품고 서울로 왔고 며칠 후 저희는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빠들을 죽인 자를 아버지가 양아들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딸에게 손양원 목사님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다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도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사랑을 손목사님은 보여주셨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험담하고 미워하고 편가르는 일이 있는 세상 속에서 실제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이 계시기에 오늘도 제 속에 있는 부족하고 죄된 모습들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여순사건이나 6.25전쟁 같은 극한 상황은 없지만 매일매일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내적 전쟁은 진행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순간순간 화평을 택하고, 격려를 택하고, 감사를 택하며, 용서를 택하고, 사랑을 택하는 사람이 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가치 있는 일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립니다. 적어도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며 살려고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칭찬을 못하더라도 비난은 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사랑은 하지 못하더라도 미워하지는 않으려 애썼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점점 화평을 이루어가고 서로 사랑을 하는 세상이 되어가는 꿈을 꾸어봅니다.

<이현희(기모치 소셜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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